스스로의 의식을 통제하라.
두 가지 일을 하며 삶의 여유를 잃었던 시절은 물러갔다. 효율적인 선택지를 선택하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체력과 정신적으로도 부하를 줄일 수 있었다. 2주가 지나고 자연스레 원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줄 알았다. 원래의 삶은 무엇일까. 적당한 노동을 끝내고 책을 읽고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는 것. 그리고 창업을 위한 밑거름을 쌓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를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상태로 돌아올 수 없었다. 첫 주는 밀린 잠을 청하며 퇴근 후 곧바로 잠에 빠졌다. 잠에 큰 욕심이 없었던 필자였지만 일을 하는 동안이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잠에 빠져 살았다. 7일간 램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램프. 램프 속에 갇혀 탈출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누가 나를 꺼내어줄까. 두 가지 일 중 하나를 포기하고 원래의 삶을 추구했던 필자에게 죄책감과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6일간 램프 속에 갇혔던 필자는 일요일 역시 숙면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협업하는 디자이너와 회의가 있는 일요일. 그와의 회의 내용이 없었다. 허겁지겁 대학 과제처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런 과제를 들고 무슨 회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노력에 미안함이 들었다. 창업자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의 주인임에도 주인답지 못했기에 창업을 한다고 설친 꼴 같았던 것이다. 필자의 애정과 노력 그리고 꿈같은 창업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시 요가와 명상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될 것인가. 램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천천히 루틴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첫걸음은 독서였다. 2개월 동안 독서를 하지 않았다. 잠을 아껴서라도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잠을 못 자며 일만 하던 동안에 적잖은 신체적 변화를 겪었기에 덜컥 겁이 났던 탓도 있다.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카페였다. 회의 자료를 준비하는 겸 독서를 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었다. 카페로 향할 때 불필요한 것들을 들고 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무선 이어폰과 휴대폰 충전기 등. 휴대폰으로 딴짓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다. 다시 메모하는 습관을 위해 노트를 챙겼다. 집중력도 예전과는 달랐지만 램프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다음 걸음은 요가와 명상이었다.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지 못했지만 체중은 줄어있었다. 아마 진이 빠진 모양이다. 제때 먹지 못하고 제때 잠을 못 잔 탓이다. 짧다고 할 수 있는 2개월이지만 필요에 의해 포기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다시금 요가 수련을 시작해보지만 몸은 굳어있었다. 몸의 굳음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발전하는 몸을 느끼는 것이 요가 수련의 요체라고 생각하기에 이 사실조차 기쁠 수밖에 없었다. 호흡과 자극에 집중하고자 했음에도 잡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반복되는 과정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상 수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이 쑤시고 잡념이 쏟아졌다. 호흡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잡념은 쏟아진다. 이 또한 명상을 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수준은 아니지만 요가와 명상수련의 효과를 체감한 사람으로 요가와 명상수련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통제된 상황을 만들고 의식적으로 감정과 욕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수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에 이끌려 지속적으로 잠을 청했던 필자는 정해진 시간만큼의 수면을 취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있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펴거나 지금처럼 글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요가매트를 편다. 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의식적인 삶을 살아가며 절제와 통제를 통해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성취한다면 스스로 삶의 주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적인 통제를 거친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이러한 경험을 <몰입 FLOW>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최적경험이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통제된 삶의 경험을 모두 최적경험이라 할 수 있을까. 최적 경험은 「외적인 조건에 압도되지 않고 자기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인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최적경험의 순간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필자 또한 창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집중하며 나아가는 순간들이 행복감에 휩싸였던 경험을 했다. 이러한 감정을 경험한 이들은 지속적인 경험을 위해 어느 정도의 고통과 인내를 감수할 수 있다. 최적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증류주의 매력에 빠져 여러 종류의 증류주를 구매하여 즐기면서 창업에 이르게 되었다. 여행지(인도)에서 경험한 위스키와 럼 한 모금이 불러온 삶에서 필자는 행복한 최적경험을 경험하고 있다.
최적경험을 위해 의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자신의 감정과 외부조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짧게 말하고자 한다. 필자는 집중력이 부족하여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면 고통스러운 나날을 경험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창업을 결심하고 창업에 도움이 되는 경영, 무역 등을 독학할 때면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이 생겨났다. 이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행복하게 공부를 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최적 경험을 경험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에서 놀라운 몰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맛본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외부조건과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통제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통제력을 갖기 위해 각자만의 수련방법을 찾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고 있다. 행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10분가량의 짧은 명상은 머리를 가볍게 해 준다. <배낭이 무거우면 오래가지 못한다.>에서 말했듯 머리 또한 마찬가지다. 머릿속의 복잡한 잡념들은 그저 방해물에 불과하다. 요가와 명상 수련만이 최적의 수련방법은 아니다.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 의식적인 삶을 위해 통제력을 길러내는 것이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필자는 2개월 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감정과 외부요인에 통제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독서와 글쓰기, 요가와 명상 그리고 창업. 한정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주인인 삶을 통해 행복을 주는 요소들에 몰입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들을 글을 통해 소개하고 많은 이들이 영감을 얻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