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는 수많은 매체에서 내세울 것 있는 삶을 마주하고 있다. 누구는 인별그램에서 책과 예술의 깊이를 논하며 지식을 뽐내고, 누구는 감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할 재력을 내보이고, 또 누군가는 기계로 찍어낸 듯한 아름다움을 과시한다.(주의할 것은 이 밑바탕에 깔려 있을지도 모를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지력과 재력과 외모 등 내세울 거리를 꺼내어 보이는 건 여기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것은 그 형태다. 현재 요리를 즐기고 있건 아무 일을 하지 않건 여행을 하건 항상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수식어를 붙인다는 말이 맞겠다. 원래는 00 직업을 가졌던 요리하는 사람, 한때는 00이었던 여행자, 사실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던 00 기업 출신의 백수. 지금은 꽃다발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이런 식이다.
그저 오롯이 지금 무엇인 내가 아니고 한 때는 무언가를 이루었던 사람이라고 명시해야 하는 룰이라도 있는 듯이 사회가(?) 인정해 주었던 (혹은 추켜세웠던) 나의 지난 허울을 먼저 소개한다.
현재의 나를 낮추고(겸손을 덮어) '지금은 그저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호호.'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실은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무언의 외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놀고 있는 한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충분히 노력해 온 삶이에요.'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라는 변명의 클리셰 같달까.
그것이 변명의 한 가지 형태라면, 우리는 왜 변명해야만 하는 걸까?그저 '이것이 하고 싶어서 하고 있습니다.' '하기 싫어서 안 합니다.' 심지어는 그러한 설명조차도 불필요한 일이 아닐까? 왜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걸까? 천상천하유아독존. 그냥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체로는충분히 괜찮지 않다고 누가 세뇌시켰을까.
인정욕구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쩌면 영원히 치우려야 치울 수 없는, 나도 모르는 새 한 올씩 빠져서 옷에 달라붙는 머리카락 같은 거라지만 우리는 대체 누구에게 인정받아야만 하는 건지, 또 얼마나 받아야 하는 건지, 그게 궁극적으로 가능하긴 한 건지 궁금하다.
말하고 싶은 주제를 각자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곳에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뽐내든 내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오늘따라 나는 좀 삐딱하다.
나는 내세울 게 없는 삶이라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사 내세울 게 있다고 해도 내세우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 내세우지 않을 생각이므로 더더욱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곳에서 내 말을 한 사람이라도 들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이야기를 하는 이상, 나는 내세울 게 없다는 말조차 얄팍한 거짓말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우습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아니 되므로, 가능한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하므로, 공격받는 수고를 피해야 하므로, 설명하는 귀찮음을 덜어야 하므로, 변명하기 싫은데 변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일 자체가 혐오스러우므로 날이 선 말들을 피해 왔는데, 오늘은 그 피함마저도 혐오스럽다 여겼나 보다.
좀 날카롭고 싶었다. 그러면 좀 어떻다고.
그러고 보면 비평가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특정 대상에 대해 비평하는 일은 얼마나 당당한가. 잠재된 공격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설사 속으로는 비난받는 것이 두려울지언정 행위를 한다는 것은 조금은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