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지..라고 뇌까리며 달린다. 고등학교 체력장을 마지막으로 수십 년을 달리기와 담쌓고 살아온 내가 갑자기, 그것도 이 새벽에 달리기라니.
04시 50분경 창문을 여니 가을 찬 바람이 훅 들어온다. 저 아래 보이는 교회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들이 주차장을 비춘다. 새벽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 태풍이 오려나 싶을 정도로 출렁이는 바람을 맞으며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 일요일 아침임에도 지나가는 차량들이 제법 보인다. 대로변에 나섰더니 웬걸 새벽 5시에도 문을 연 주점이 있었다. 창문을 열어둔 탓에 손님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2층 주점을 엿보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 목적지인 개천변 산책로까지 가는데 역시나 아직도 영업을 하는 주점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산책로에 다다르자 띄엄띄엄 운동하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때로는 걷고 있는 노부부도 발견된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그리고 새벽 5시임에도 걷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미쳤지.... 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두 다리가 따뜻해져 오는 만큼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자전거도로 옆 보도를 달리며 바닥에 적힌 숫자를 확인한다. 100.. 200.. 300.. 800에서 끊긴 숫자. 안 돼... 숫자를 알려줘. 얼마나 뛰었는지, 나는 얼마나 뛸 수 있는지 가늠하고 싶었다. 일단 계속 뛰다가 그만 뛰고 싶어졌을 때 휴대폰 걷기 어플을 열었다. 그리고 걸은 거리를 제외하고 얼마나 뛰었는지를 대략 계산하고나서야 오늘 달린 거리와 내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멈추어 선 순간 다리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을 보니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잠시 멈추어 섰다가 조금 더 걸어 땀을 천천히 식힌 후 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온다. 아직 익숙지 않은 새벽 달리기에 졸린 몸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오다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봤다. 이지러졌지만 밝은 달과 별이 흐른다. 새벽이지만 여전히 어둡고 날이 맑은지 별빛이 매우 반짝였다.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알아보는 오리온자리가 오늘도 선명했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구름이 자꾸만 이동하는 탓에 별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한참 올려다보다 고개가 아파 다시 걷는데 여전히 드문드문 보이는 달리는 사람들. 저 사람들도 처음일까, 아니면 매일을 달리고 있을까 궁금증이 인다. 이미 힘이 빠진 나는 천천히 걸어서 다시 주택가로 들어섰는데 종합병원 환자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길 건너편에서 머리에 링거를 올리고 산책을 하신다. '역시 병원은 답답하지... 암...' 속으로 나만의 공감을 하며 아주머니를 지나친다. 그리고 새벽 6시가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영업을 하는 주점을 보며 나의 20대를 생각한다. 그때는 밤을 새워도 하루면 체력이 회복되었었더랬지... 하면서. 집 근처에 다다르자 새벽기도가 끝났는지 교회 불빛이 꺼졌고 그 이른 시간에도 착장을 곱게 하신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다시 아파트 정문... 진짜 태풍이 오려는 건가? 정문 앞 초소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미친 듯 줄기와 나뭇잎을 흔들어댄다. 느티나무도, 그리고 느티나뭇잎의 춤도 꽤나 좋아하는 나는 잠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온다.
새벽. 아직은 졸리고, 생각할 거리와 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달리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