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하철 1호선을 탔다. 남영에서 서울역을 지날 즈음이었나. 반바지를 입은 다리 한쪽이 불편한 사람이 지나간다. 다리 털은 수북하고 관절이 꺾이지 않는지 뻣뻣하게 펴진 상태로 어색하게 걷는다. 승객들에게 껌 한 통 사달라 외치지만 아무도 사지 않는다. 나도 휴대폰을 보며 그를 피한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는 고개를 들어 사위를 살폈다. 순간 왼쪽 구석에 서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슬픈 눈이었다. 눈빛을 꾸며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 슬픔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찰나의 순간 눈길을돌렸다.
그는 진심으로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속이려 든 게 아니라 진짜 배고파서, 할 수 있는 게 껌을 파는 것이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일 수도 있다.
10년도 더 전에 어느 횡단보도에서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돈통을 목에 건 사람에게 돈을 준 일이 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왠지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는 길에서 누구에게도 적선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지만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껌을, 초콜렛을 사게 됐다. 그러면서도 늘 찝찝한 마음이 한 켠에 남았다.
천 원이 아깝다기 보다는 내가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찝찝함이었다. 바보같이 속았을까봐.
순진하게 믿고 뒤통수 맞기 싫어서 적선 하나,도움 하나 쉬이 하지 못하는 내 작은 그릇이 때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