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옆에 모로 누운 할머니도 울고 있다. 그렇다. 나는 할머니가 울자 따라 울고 있는 것이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작디작은 브라운관에서 흐릿하게 남북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할머니와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린다.
할머니의 삶, 즉 할머니가 살아온 궤적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누군가는 자서전을 낼 만큼 자기 일생을 구구절절 기록하고 싶어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나 기억을 소환하여 단순히 이야기해내는 일조차 쉽게 상상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먹고살기 바빠서, 기억이 아름답지 않아서, 이야기하는 법을 몰라서...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할머니는 스물 즈음에 아버지를 낳으셨다. 이건 할머니가 내게 말씀하셔서 안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생년과 아버지의 생년을 비교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예전엔 출생신고 기한 페널티도 없고, 각자 적당하다고 생각하던 때에 출생신고를 하였으니 제적의 기록이 100프로 신뢰할 만하지도 않다.
여튼, 내가 할머니에 대해 아는 사실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내가 태어난 이후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있어도 그 이전의 할머니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나의 할아버지에게 시집은 언제 오신 것인지, 그전에 어느 집 딸이었는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아, 제적등록부를 발급받아본다면 본적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본적이 태어난 고향과 꼭 일치하지도 않으니 그도 정확하진 않다.
어디에서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 어떠한 유년기를 보내고 시집을 왔는지, 그리고 시집 생활은 어땠는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엔, 할아버지 사후엔 어찌 살아오셨는지 할머니의 입으로 들어본 일이 없다.
예외적으로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이산에 관한 것이었다.
1945년 광복전후였을까, 아니면 1950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을까, 할머니의 친정가족은 모두 북쪽 어딘가로 떠나버렸다고 한다. 출가외인이던 할머니만 남한에 남겨두고 모조리 다 떠났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때 버림받은 기분이었던 듯하다.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떠나버린 가족에게서 수십 년이 지나 편지가 왔었음을 할머니는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친정가족이 북쪽 어딘가에서(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다.) 할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할머니 손까지 닿질 못했다. 시절이 엄.했.던.때라 가족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판단했던 우리 가족 중 누군가는 그 편지를 할머니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백발의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TV에서 누군가는 서로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우는데 할머니는 그저 홀로 누워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었다. 학문을 배운 바 없고 그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옛말을 몸소 체험하며 평생을 살았다. 자녀에게 괴팍했고, 며느리에게는 모질었다.
그런 할머니가 울었다.
그날 흘린 할머니의 눈물에는 떠나버린 친정 식구가 흐르고 있었을까.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젊은 나날이 흐르고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할머니가 이젠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 어느 곳에 계시든 다시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나마 옆에서 같이 울던 흑발의 꼬마도 이젠 곁에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