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자정 예약발행이 되기도 전부터 생각은 했다. 다음 주 분도 ‘미리 써놔야 하는데......’ 다만 목요일까지는 집중해야 할 다른 일이 있으니 금요일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아침에는 글감들이 머릿속을 흘러 다녀서 놓치지 않으려 짧게 음성녹음을 해야 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부터 나는 모든 에너지를 상실했고 그렇게 주말이 가고 이번 주 화요일을 지나쳤다.
중학교 2학년,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꼭 말하게 만들고 말겠어."
그는 씩 하고 웃는다.
같은 반 친구 중 하나인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되돌아오는 것은 엷은 미소뿐이었다. 인사를 하면 미소로 답하고, 질문을 하면 고개만 끄덕이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책 읽기를 시키면 그도 마지못해 책을 읽었다. 그는 발성기관의 문제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소리 내지 않는 것을 택한 것 같았다. 설명하지 않기를 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상했겠지만 학년이 끝나는 시점에 나의 다짐은 실패로 돌아간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일찍 내가 포기해 버렸다는 게 맞는 얘기다. 지나칠 때마다 인사를 하고 일부러 가끔 찾아가 이야기를 건넸지만 늘 돌아오는 무음의 대답 속에 그가 말을 할 거란 기대는 점점 사라졌고, 그가 꼭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에게 권하는 무언가가 강요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나의 오지랖에 불과했고 그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나에겐, 아니 어쩌면 누구에게도 자격은 없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말을 줄여야 한다. 내가 하루에 내뱉을 수 있는 단어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그 양이 적은 편에 속한다. 누가 물을지 모르지만, 내겐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이 일변 같은 범주 안에 들어있는 듯하다. 한 주머니 속에 있는 자원을 사용하다 보니 주머니 속 자원의 고갈은 말과 글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면 글을 쓸 자원이 부족하고 글을 많이 쓰면 말할 자원이 부족하다.
가용 에너지도 한정적이다. 사람을 만나고 바깥활동을 하면 심리적 에너지가 굉장히 빨리 소모되는 류인데 심리적 에너지의 고갈은 신체적 에너지의 소모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 심신이 녹다운되는 일이 잦다.(내 사회생활은 남의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일이다 보니 늘 배터리 용량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말하고 활동하다 보면 어느새 심신은 지하 19층까지 날아가 있는 것이다. 이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도록 하자.)
늘 해변에 있는 것처럼 빠르게 방전되고 쉽게 충전되지 않는 배터리, 충분하다고 볼 수 없는 단어 산출량.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 글을 쓰려면 말을 줄여야 하고, 말을 하려면 글을 줄여야 한다. 글을 쓰려면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만나면 글쓰기를 미뤄야 한다.
그날의 그 아이도 그랬을까.
나처럼 작은 말 주머니와 저용량 배터리를 가져서 말은 포기해야 했던 걸까?
함부로 말을 해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다른 것을 하지 못하게 되니 일찌감치 자신만의 시간표를 만들어 사용했던 걸까?
말하기를 거절한 것에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나는 늘 궁금했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 답을 듣고 싶었다. 차마 묻지 못했고, 어차피 듣지 못할 대답이었지만 무엇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마지막 해, 다른 반이 되어 그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어지면서 그 궁금증이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오늘 문득 떠오른 그가 나는 또 잠깐 궁금해진다.
또 오지랖 넓게 그를 걱정해 본다.
그저 에너지의 방출 방향이 다른 내향인을 보고도 아무 상관없는 ‘소심’이라는 단어를 결부시키고, 내향적인 것은 ‘긍정적이고 독려할 만한’ 외향성과 달리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 특성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한 세상에서, 그는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내향적이지도 외향적이지도 않을 그를, 그저 그일 뿐일 그를, 괴롭히는 이는 없는지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