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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Sep 07. 2024

대통령이 됐을 거야_2

스승의 은혜

"절대로 선생님이 되지 않겠어." 나는 당신을 만나고 이렇게 다짐했다.



선생님이 꿈이었다.


자라면서 수십 번은 바뀌었을 꿈이었지만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몇 년은 더 유지되었을 꿈.

 

선생님을 만난 해에 나는 이를 갈며 다짐한다.


"절대로, 절대로 선생님은 되지 않겠어."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나는 반장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이없게 혼나는 일도,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듣는 일도, 없는 미움을 받는 일도 피할 있지 않았을까?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다.

교장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오니 학예회 때 만든 작품들을 지금 싹 치우세요."


나는 속으로 갸우뚱한다.


'치우라고? 정리하라는 뜻일까? 치우라는 뜻일까?'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5~6학년 반장 부반장들은 모두 건물로 돌아가 '바로 치우라'는 지시를 받는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늘 그렇듯 담임선생님한테 질문하면 혼날 것 같고, 바로 안 들어가 혼날 테니 일단 뛰어들어다.


아니나 다를까, 5~6학년 모두 헷갈려 다. 은 '정리하라'는 의미 같은데, 워딩이 '치우라'였기에 다들 서로 눈치를 다. 작품이 진열된 복도에 선생님은 다. 선생님들은 우리를 바로 들여보내기만 했지 뭘 어떻게 치우라는 건지 아무런 추가 설명이 없다.(진열된 작품들은 이미 정리할 것도 없이 정갈다.)


6학년들이 먼저 학예회 작품들을 말 그대로 진열대에서 내려 치우기 시작하자, 그걸 본 5학년들도 따라하기 시작다. 나도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천천히 치우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복도로 들어다. 그리고는 불같이 화를 다. 겨우 두 개 정도 한쪽으로 치웠으니 다시 진열하면 그만일 것을.......

대로하며 나를 벌세다. 칠판 분필 걸이에 두 발을 올리고 엎드려뻗쳐. 피가 거꾸로 솟는 체벌.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엄마의 취미 작품을 가져오라고 한다.

엄마는 취미가 없다. 따라서 작품도 없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렇지만 선생님은 연거푸 가져오라고 말한다.

없는데 무엇을 가져오라는 걸까.


매일 학교에 가서 말씀드린다.

선생님 가져올 수 있는 게 없어요.

매일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가져오라고.


반장 엄마가 꼭 작품을 내라는 법이 있었나.

나는 울고 싶다.

칠 것 하나 없는 집.

모두 입에 풀칠하기 바쁜 이웃. 빌려서라도 가져가고 싶지만 주변에 취미 작품이란 게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계속해서 작품을 가지고 오라 강요하는 선생님.

결국 나는 어찌어찌 아는 아주머니 집에 있던 이름 모를 그림을 빌려 간다. 그리고 그 그림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달고 과학실에 전시된다.

나는 거짓으로 붙어 있는 그림을 보며 환멸 부끄러움을 느낀다.

선생님은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길 원한 걸까?



가난한 나는 반장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선생님을 찾아와 인사를 할 수 있고, 선물을 줄 수 있고, 취미가 있는 부모를 둔 아이가 반장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잘못했다.

누가 추천을 하든 반장선거 출마 따위 안 한다고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선생님은 날 조금 덜 미워했을까?



어쩌면 나는 대통령이 됐을 거다.

사랑받았다면. 미움받지 않았다면.


내가 이미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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