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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Sep 03. 2024

대통령이 됐을 거야_1

믿음이 없는 아이

열두 살, 너는 TV에서 장한나를 처음 본다. 그리고 너는 졌다.



천재 첼리스트 소녀.

티 없이 뽀얀 살결에 밝은 웃음을 지닌, 무엇보다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


영상 속에서 일방적으로 만난 아이를 너는 질투한다.

요철 없이 맨들한 호빵 같은 살결을? 아니면 여름 햇살 같이 활짝 핀 미소를? 세계적인 대가가 인정한 연주 실력을? 그녀가 가졌던 기회들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너는 깊은 좌절에 싸인다. 결코 너는 가질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너는 반 1등을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너는 전교 1등을 한다.


너는 너를 사랑하지 못한다.


고3. 너는 혼자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학교도, 학부도 네가 선택한다.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매일 신문을 보고 예상하고 답을 생각한다. 뉴스에 나오는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부끄럽지 않을 만한 대학에 붙는다.


그리고 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지 못한다.



친구는 네게 물었다.

뭐가 힘든 거냐고_


‘뭐가 힘드냐고?’

‘나는 내가 싫어. 내가 나인 게 싫어. 나로 태어나서 나로 사는 게 싫어.’



너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엔 그래 보였다.

하지만 너는 많은 것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네가 가진 능력을 믿지 못했다.


너는 이미 다 자 아기 코끼리였다.


너조차도 알고는 있었다.

그깟 얇은 밧줄, 이제는 너무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것을.

러나 밧줄을 끊고 우리 밖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네 안에서 말했다.

아니야. 너는 못 끊어. 너는 힘이 없어.



왜 너를 믿지 못했느냐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원인이야 여러 가지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기로 한다. 어떤 원인과 결과도 삶이라는 사슬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단절된 사건으로라도 너를 보여주고 싶지만 함부로 너를 꺼내는 게 상처가 될까 두렵다. 너를 이야기하기엔 내 솜씨가 너무 투박한 탓도 있다.



어쩌면 너는 대통령이 됐을 거다.

너를 사랑했다면. 네가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면.


체념을 먼저 배우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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