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서 좌석에 앉았다. 오른쪽 창가에 무언가 보인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렌즈통 두 개. 순간 나는 어느 몰상식한 사람이 눈만 빼고 쓰레기를 고이 버리고 갔나.. 생각하며 눈의 주인을 속으로 비난한다. 그리고 빈 렌즈통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전송한 후 친구의 반응을 기다린다.
조금 시간이 지나 친구에게서 온 답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개 바빴나 봄"
"관대한 반응인데?"
"애 키우다 보니 저런 건 일도 아닌 것 같아."
".. 그래 바빠서 깜빡했을 수도 있겠구나."
"개념 없다고 생각하기엔 나도 요즘 넋이 나가있어."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참 괜한 날을 세우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의도치 않게 무언가 놓치고 만 경험이 분명 있었는데... 놓친 게 생각났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저 렌즈통의 주인도 어쩌면 정말 렌즈통을 치우려 했다가 깜빡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혼자 속으로 머쓱했다. 만일 일부러 버리고 간 거라 해도 그걸 속으로 비난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사실도 상기됐다.
게다가 내가 렌즈통을 집어서 치웠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저걸 왜 치워? 길에 쓰레기통도 찾기 힘든데 굳이 액체가 담긴 저걸 내가?' 하는 마음이 크게 올라왔다.
가지런히 버려진 렌즈통을 보고 순간 들었던, 내가 더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가? 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쉽게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일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가? 내 생각의 범위는 때로 얼마나 좁은가?
다른 친구 하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내 남편은 한 가지 면을 보면 모자란 거 같은데 또 다른 면을 보면 나보다 훨씬 훌륭해"
대상을 좁게 보지 않고 그 범위를 넓게 볼수록 알 수 있다. 우리는 결코 항상 아래에 머무를 수도 위에 머무를 수도 없다는 것을. 대상을 하나의 특질로 판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오만에 차서 나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 일이 우스웠다. 나는 대체로 윤리적이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비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나만 노력하고 다른 사람은 노력하지 않을 거라는 섣부른 판단도 오만이다. 모든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경험과 생각을 확장시켜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조금 더 덜 싸우는 사회의 바다에 작은 물방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