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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Nov 19. 2024

정차한 후에 일어서고 싶습니다.

진짜예요.

"제발 정차한 후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라고 써 붙어 있었다.


마을버스 하차문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벽에 노란 스티커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제발 정차한 후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스가 서기도 전에 일어나서 하차를 준비하면 저렇게 써놓았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나길래 저렇게 우려할까? 생각했다.


나 또한 버스가 나를 정류장에 내려놓지 않고 문 닫고 떠나버릴까 봐 늘 달리는 버스에서 일찌감치 일어나 하차문 앞에 서 있는 1인이다.


나라고 어찌 벨을 누르고 버스가 정차하길 기다린 후 차가 멈추면 비로소 여유롭게 일어나 하차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만은...


습관이 무섭다.


예전에는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하차문 앞에 미리 서 있지 않으면 기사님은 버스를 바로 출발시키곤 했다. 뒤늦게 일어서서 내리겠다고 하면 눈총을 받았다.


그러니 아직도 그렇게 버스가 붕붕 달리는 중에 일어나 하차문 앞에 딱 붙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운행 중 사고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는 요즘이지만 오래전부터 들여진 습관이 쉬이 변할 리 없다.


그리고 여전히 급하게 운행을 할 수밖에 없는 기사님들 사정도 있다.

마을버스야 하차시간을 넉넉히 줄 여유가 조금 더 있는 것 같지만, 장거리를 달리는 시내버스는 여전히 급히 타고 급히 내리는 것이 다반사다. 제발 버스가 멈추면 일어나라고 말하는 일도 드물다. 모두 바쁘니까.


대한민국은 여전히 바쁘고, 버스도 바쁘고,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미리미리 내릴 준비를 한다. 그렇게 휘청대는 버스에서 함께 휘청인다.


도 제발 정차한 후에 일어서서 안전하게 내리고 싶다. 마을버스뿐 아니라 일반 시내버스에서도 그렇게 여유롭고 싶다.(그 정도를 여유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굳이 다른 나라의 예를 들고 싶지는 않고, 적어도 버스에서만큼은 단 몇십 초의 여유를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그런 날이 빨리 오려면 나는 이런 팻말을 써서 걸고 다녀야 할까.


"저도 제발 버스가 안전하게 멈춘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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