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나는 박완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는 글을 너무 잘 쓰기 때문이고, 둘째는 글을 역시나 잘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이유는 조금 다르다. 그가 글을 잘 씀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의 글은 내게 지루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팬이 우리 집에 있어서 그의 책이 집에 쌓여갔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어쩐지 그의 책 한 권을 다 읽기가 매우 어려웠다.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필력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고 내가 글을 짓는다면 그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루했다. 몸소 겪은 시대상과 인물들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 언뜻 보면 섬세한 터치를 한 그림이 그러하듯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지만, 그림에 대한 취향이 제각각이듯 내겐 그 그림이, 그 글이 맞지 않았던 듯하다. 마치 한여름 그늘 없는 뙤약볕에 서서 운동장 조회를 하는 지루함으로 그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참척의 고통을 느끼던 때에 남긴 에세이를 보더라도 그녀의 필력은 놀랍게도 흐트러짐이 없었다.(필력이 슬픔으로 흐트러진다는 것이 어쩌면 말이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이나 그는 슬픔을 안고, 쥐고 있었기에, 와중에도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그가 신기했다.)
그의 말년에 지은 글들을 모은 [노란집]의 서문에서 그의 딸은 어머니의 유머감각을 칭찬하는데 나는 그의 유머감각마저도 지나치게 철저한 느낌이 들어 도리어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무엇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 작가의 고급 자질이라면 그는 분명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을진대, 나는 왜 그의 글을 사랑하지 못했나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내 수준이 딱 거기였을 수도 있고, 그저 개인의 취향 탓일 수도 있겠다.
오늘 아침에 내가 굳이 박완서의 팬이 아니니 뭐니 떠들어대는 것은, 요즘 통 책을 읽지 않는 내게 역시나 숙제처럼 박완서의 책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책을 집에 많이 쌓아두는 것을 질색팔색하는 나이건만 어느 틈에 책은 또 집으로 들어오고, 그중 박완서의 책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해치우지 못한 숙제처럼 그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런 글을 쓰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와 나의 케미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시간인가... 헛생각을 해보며 책을 한 장 넘겨보기로 한다.
겸손하게 책을 읽어봐야지. 내가 거부감을 느꼈던 지나친 완벽함에 대해 낮은 자세를 가져야지. 글 속에서의 모든 철저함이, 잘나서 잘난 척을(잘난 것이니 애초에 잘난 척이라 부를 수 없나?) 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이니 좁은 마음 비우고 너른 마음으로 봐야지.
그래도 또 지루하면.. 역시 그저 내 취향이 아닌 거라고 인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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