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지적허영과 쓰레기 사이

by 목요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아 불분명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파울로 코엘료는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쌓아두는 것은 지적 허영을 드러내는 일이다.'(워딩은 부정확하다. 서재에 쌓아두는 것을 말했는지, 도서관에 쌓아두는 것을 말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비뚤어진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그러니까 책으로 부를 일군 사람이 책을 구매하고 쌓아두는 일을 지적허영이라 지적한다면 그건 좀 모순이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지적허영심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지적허영을 꼬집는다는 게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그 이야기에 관한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밥벌이는 밥벌이고, (특히나 크게 벌어들이는 밥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적하지 못할 까닭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쓰는 일은 그의 업이고 그로 인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어쩌면 의도한 바는 아닐 수도 있으니(?) 그의 책은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줘야겠다. (2023년 8월 당시 한국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파울료 코엘료는 세계 부자 작가 7위였다.)


책을 쌓아두는 일이 지적 허영의 방증임은 나도 동감하는 바다. 뭐 몇 가지 책을 두고두고 여러 번 읽는다면야 고이고이 간직해야 할 것이 분명하지만 수 백, 수 천, 혹은 수 만의 책을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신간은 또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 신간을 읽지 않고 기존의 책만을 간추려 놓고 반복해 읽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책장과 서재의 책들은 먼지를 쓰고 그 자리를 수년간 지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한 번 본 드라마를 두 번 보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게 보았다고 해도 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흥미롭게 읽었다 해도 두 번 이상 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몇 가지 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좁은 방에 쌓아두는 일을 매우 싫어하는데, 파울로코엘료처럼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도, 그렇다고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번거로워 재활용쓰레기로 가끔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생긴다. 책 보관상태가 너무 좋다. 책에 손기름이 묻는 것이 싫어 한 페이지의 가장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넘기고 책에 필기 따위는 하지 않으며, 당연히 책 낱장을 접지도 않는다. 쓰레기로 버리기엔 너무 깨끗하다. 버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너무 깨끗한 쓰레기. 모두 잘 쓰인 글들. 작가의 시간들. 나에게 함부로 버려져도 좋을 글들이 아니다. 미안하다.


그래서 미안함이 사라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묵혀뒀다가 버리고는 한다. 나의 지적허영을 도서관에 버리고 오면 덜 미안할 것 같으면서도 도서관이 왜 이리 멀기만 한지... 분명히 도서관에 가고는 하는데, 그 길에 지적허영을 들고 가기는 왜 이리 무거운지...


나는 오늘도 지적허영을 재활용쓰레기로 버린다.

묵직한 허영을 한 줌 덜어낸다.




#지적허영#지식인#교만#쓰레기#재활용쓰레기#도서관#서재#파울로코엘료#코엘료는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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