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신 안절부절못하며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중이다. 마흔이 넘어 또다시 신입사원이 된, 그래서 새로이 배우고 있는 일에 대한 조바심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예보로 알고 있었다지만 막상 세차게 내리는 짙은 가을비에 샛노란 단풍이 모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때문인지...
J는 그의 이야기가 별 거 아니라 했다.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그저 그렇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저 그렇다는 뜻은 특별할 것 없는 기억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J의 뜻을 거슬러 그 특별할 것 없는 기억을 굳이 적어 내려간다. 이러다 J에게 혼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J는 어린 시절에 동네 언니들과 주로 놀았다. 마을에 있는 공원 같은 곳에는 두 그루의 큰 은행나무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그 아래서 자주 말이다.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은 아련하기만 하고 나무와 언니들밖에 생각이 안 난다고 했는데 나는 왠지 그 동네에 가보고 싶어졌다. 지금도 그 큰 은행나무가 그대로 있을까? 크기는 또 얼마나 클까? 만일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무는 J를 기억할까?
은행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 천 년을 넘어 살기도 하는데 J가 살던 동네의 나무도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게 있어 은행나무는 참 기분 좋은 나무다. 특히 봄에 짧은마디가지 끝에서 잎을 틔우고 암꽃을 피울 때는 왠지 모를 간지러운 기쁨을 주고, 한여름 부채꼴의 짙은 초록잎을 볼 때는 그 향기가 따뜻하여 사랑스럽다. 가을에는 모두가 탄성을 지를 만큼 샛노란 단풍을 뽐내는데 그 단풍이 오늘 내린 비로 마지막을 맞이할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이미 닥쳐온 추위와 바람에 지고 사라졌을 노오란 잎을 오늘까지 보았으니 감사히 여길 일이지만 막상 늦가을 비에 예쁜 잎을 모두 떨구리라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다.
가을에 은행 열매가 익어 터질 때는 주변을 고약한 냄새로 가득 채우지만 난 그마저도 그리 싫지만은 않다. 그것은 은행나무가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니까. 특히 가로에 심긴 은행나무는 매연과 소음 속에 타들어가면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니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다. (물론 열매를 실수로 밟아서 터질 땐 나도 낭패라고 생각한다.)
흔하디 흔하고, 그래서 어쩌면 그 이름을 모를 이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은행나무다. J가 말했듯이 아련하긴 하나 특별할 거 없는 기억 속의 나무다.
그런데 흔하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로 희소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흔한 것과 흔하지 않은 것 중 흔하지 않은 것이 더 위에 있고 흔한 것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 건 언제부터 정해진 걸까.
J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다.
흔하지만 J만이 기억하는 그 나무들을 보고 싶다.
1. 분포: 중국; 우리나라 전국 식재
2. 성장: 높이 60m(낙엽 교목)
3. 개화: 5월(암수딴그루)
4. 용도: 가로수, 공원수, 식용(열매), 약용(잎), 바둑판, 기구재 등
*참고문헌: [식별이 쉬운 나무도감] <국립수목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나무] <박승철>
*사진: 목요
매우 아름다운 수형도 있고 그보다 못한 수형도 있지만 모두 열심히 제 할 일을 다 하며 한 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