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다섯시 Jan 04. 2018

아기와 개의 시간

아기는 자라고 개는 늙는다




너는 점점 잘 걷게 되었다.

나는 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너는 앞서 나갔고
나는 뒤쳐졌다.


시간은 공평하게 흘렀으나
누구는 이만큼 컸고
누구는 이렇게나 늙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공평한 시간을 서로 나누어

가슴에 촘촘히 새겨두었지.

새겨진 시간은 
더 이상 자라지도 않고 나이들지도 않아
그 자리에 화석처럼 남아있어,
그걸로도 충분하단다.                                                  




12년 전, 유기견 센터에서 개 한 마리를 데려왔다. 



걱정이 앞섰다. 이 녀석은 저 무성한 털 뭉치 속에 어떤 상처를 숨겨놓았을까. 개를 데려오기 전부터 전전긍긍했다. '혹시 내게 마음을 주지 않으면 어쩌지.', '사실은 무참한 학대를 당했어서 사람을 피하면 어쩌나.',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하여간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그런 예상 가능한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보호소에서 개를 데려온 날, 개는 현관문 앞에 앉아 집을 휘 둘러보더니 푹신한 이불에 가 앉아 움직이질 않았다. 며칠을 밖으로 데려나가려 해봤지만, 개는 이불에서 꼼짝달싹 하지 않았다. 나는 '오수의 개' 동상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눈으로 확인할 일이 있다면 지금 이 개의 모습과 꼭 같으리라.  개는 불이라도 나야 겨우 움직일 듯했다.

 

어느 날인가, 억지로 개를 안아 들고나가 길가에 내려놓았다. 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조차 까무러치게 놀라더니 이내 코를 킁킁거리며 조금씩 발을 뗐다. 개는 5분을 채 걷지 못했다. 어디가 아픈가 가만 살펴봐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개는 계속해서 "끄응, 끙" 거리며 자신을 어서 안으라는 듯, 가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너는 도무지 걸을 수가 없는 거구나. 


보통 유기견센터에 있는 개들은 '뜬장'이라는 철창 우리에서 지낸다.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은 장이다. 뜬장에서 생활하는 개들은 당연히 발이 아프다. 발이 끼기도 하고, 피가 나기도 한다. 늘 갇혀있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없다. 서 있는 것이 고통이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이다.

고운 흙바닥이 아닌, 서 있기도 힘들었을 뜬장을 밟고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책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개는 조금씩 발자국을 쭈욱쭉 길게 뽑아냈다. 한 계절이 지나서야 나의 개는 다른 개들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걷게 됐다.

하지만 버릇은 남았다. 
는 늘 앞서 걷다가도 뒤를 돌아보았다. 꼭 6초에 한 번이었다. 6초마다 뒤를 돌아보며 나를 확인했다. 내가 행여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그랬을까? 늘 정확히, 6초마다 확인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야, 괜찮아. 나 여깄잖아" 하고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개는 알아나 들었을까.


이 버릇은 십 년이나 계속됐다.

이제 할머니가 된 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한 생명에게 신뢰를 얻는
 데, 꼬박 십 년이 걸렸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전 01화 [아기와 늙은 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