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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Jan 11. 2018

네, 1녀 1견입니다.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





아이와 개를 데리고 나가면 꼭 듣는 말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듣던 말

"(설마)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들은 말

"개는 어디 보내야 하지 않아요?"




"이제 개는 어디 갖다 주지 그래."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전하자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 뒤에 "개는 어디 보내야겠네."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랬다. 그 말은 우리를 위하는 말이었다. 태어날 아이에게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꼬리말이 나와 남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새 식구가 태어난다고 헌 식구를 내보내라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나는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서랍에는 늘 개나 고양이, 소, 염소 따위가 들어앉아 있다. 서랍을 열어보면, 바다가 보이는 마루 위에 고양이가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고 있다. 섬돌 위에는 작은 개가 앉아 꼬리 치고, 밖으로 이어지는 대문 옆으로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있다. 집짐승들은 아무렇게나 마당에 누워있거나 이웃마을에 갔다가 며칠씩이나 안 들어오기도 했다. 사람도 짐승도 마음이 여유로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집짐승이 자유롭게 드나들 앞마당도, 마루도 없다. 앞마당에 살던 개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개가 털을 떨구고, 아기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곰팡이처럼 피어났다. 우리는 그런 시절을 살고 있다. 나는 개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다 마을에서 살던 기억의 서랍을 닫을 수 없다. 그래.


나는 개를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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