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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Jan 18. 2018

그 많던 늙은 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과 개, 나이 듦에 관하여


                 



이상하죠 요즘.
세상이 잠잠해요.


예전엔 아기가 자주 으앙 하고 울었는데
요즘은 우는 표정만 하고
왜 울지를 않는 건데요?


언니는 왜 그렇게 
조그맣게 말하는 거예요.

나, 하나도 안 들려서 조금 신경이 쓰여요.


오빠도 예전엔 퇴근할 때

발소리를 저벅저벅 내서,
내가 현관문까지 마중 갈 수 있었는데.
왜 요즘엔 살금살금 다니는 거예요?


자다가 눈 떠보면

내 앞에서 날 바라보고만 있고.
나 요즘 깜짝깜짝 자주 놀라요.


그래도, 하나 좋은 건 잠이 솔솔 온다는 거예요.
그래도, 조금만 크게 말해줘요.
세상이 너무 조용해요.                      


                            



우리는 아기였을 때, 어쩌면 다시는 못 받아볼 만큼의 커다란 사랑을 받는다. 스스로 살아갈 여력이 0에 가까운 이 작은 존재는, 같은 이유로 보호받는다. 문득, 대학 교양 수업을 듣던 중에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기는 검은 눈동자,
즉 동공이 비현실적으로 크다.
커다란 동공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렁그렁한 두 눈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부모의 시선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여
지속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러니까 스스로 밥을 떠먹고 용변을 가리고 잠을 잘 줄 알게 되면 아이의 동공은 점차 성인의 그것과 같은 크기로 줄어든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이 이야기가 교수님의 개인적인 가설이었는지, 진화론에 기댄 가설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 분명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아기의 커다란 눈동자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스스로 살아낼 재간이 없는 아기는 딱 하나 있는 필살기, 즉 눈망울을 반짝반짝하게 빛내어 이 거칠고 척박한 땅 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세상에 허투루 만들어진 것은 하나 없다.


강아지의 눈도 아기의 눈과 닮았다. 두 눈에 포도알 같은 검은 눈동자가 꽉 들어차 있다. 그러나 사람과는 달리, 세월이 흘러도 개의 눈빛은 여전해 보인다. 어쩐지 가엾고 늘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강아지일 때와 다를 바 없는 눈이다. 왜일까. 어쩌면 개들은 여전히 이 고단한 땅 위에서 스스로 살아낼 방법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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