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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Jan 25. 2018

사랑? 그딴 건 개나 주라 그래.

네, 그 사랑 잘 받았습니다.



나의 어린 개는 죽을 날을 받아놨었다.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사형수가 된 기분일까. 대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어느 유기견센터의 인터넷 사이트에 흘러들었다. 거기엔 주인을 잃은 개와 고양이, 하다못해 고슴도치까지 수두룩하게 있었다. 나는 외면하듯 사진을 스쳐보다가 눈에 히마리 하나 없는 개를 보았다. 기호 <b-9629 sac>쯤 되는 개였다. <암컷, 중성화 안 됨, 온순함, 일주일 뒤 안락사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개에 대한 정보는 그게 다였다. 나는 개의 사진을 보자 가슴 한 구석이 구겨지듯 울렁거렸다. 곧장 유기견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기말고사 끝나면 데려갈게요. 안락사 예정일보다 일주일만 더 살려주세요."


시험이 끝나고 약속대로 유기견 센터엘 찾아갔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서 갔다. 꽤 추운 날이었다. 버스는 시골 한적한 곳에 나를 떨구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멀끔히 목욕을 한 그 개가 내 앞에 섰다. 특유의 히마리 없는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보고 땅바닥을 한 번 보았다. 개는 나스르르한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를 부끄러워하는 게 분명했다. 


개를 작은 천가방에 넣어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렸지만 왠지 춥지는 않았다. 되려 가방 안에 든 털북숭이가 걱정됐다. 개는 무척 가벼웠다. 두루마리 휴지 두 개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어린 나는 어린 개를 들고 서서 생각했다. '얘는 이리 가벼워서, 이렇게 쉽게 버려진 걸까.'  이내 버스가 도착했고, 다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집으로.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어린 개는 크리스마스에 죽을 날을 받아놨던 거였다. 아무런 약속도 없던 나와 염라대왕과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코앞에서 헤어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개는, 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서로 어색한 눈빛으로, 약간의 경계를 주고받으며 서먹서먹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 열두 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12월 25일은 개의 생일이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열두 번의 생일을 잘 챙겼다. 이제껏 사람이 먹는 케이크를 준비해서 사람들끼리 축하를 하고, 개에게는 "오래 살아라!" 하고 덕담을 해왔다. 이번에는 제법 나이 든 개를 위해 삶은 고구마 케이크를 만들었다. 개는 꽤나 만족한 눈치였다. 앞으로 우리는 몇 번이나 개의 건강을 빌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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