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다섯시 Feb 01. 2018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당신의 품종은 무엇입니까


너는 무슨 종이니?


몰라요,

나에게도 엄마 개, 아빠 개가 있었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는 잊었어요.

너무 까마득한 옛날 일이에요.



너는 어디에서 왔니?


몰라요,

강아지 공장일 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당신이 사는 집 근처,

조용한 골목길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구요.


그냥,

강아지 별에서 왔다고 해 둘게요.

네, 나는 강아지 별에서 왔어요.







얘는 무슨 품종이에요?



어린 개와 산책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었다. 나는 무심코 "잡종이요."라고 했다. 입 밖으로 잡종이라는 단어가 새어 나오자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냥 <믹스>라고 말할 걸 그랬나 싶었다. 물어온 이는 그러나 말거나 "그렇군요." 하고 제 갈길을 갔다. <믹스>나 <잡종>이나 같은 말인데, 왜 어떤 말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떤 말은 조금 괜찮아 보였던 걸까.


종종 사람들은 나의 개를 보며 "골든리트리버 강아지 맞죠?" 하며 반가워했다. 확실히 어린 개는 이름에 '골드'가 들어간 그 개를 닮은 듯했다. 털 색깔이 얼추 비슷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졸지에 골든리트리버가 된 개는 한참 동안 사람들에게 쓰다듬을 받았다. 내가 개를 <잡종>이라고 했을 때와 <골든리트리버>라고 인정했을 때, 사람들이 개를 대하는 온도 차이가 너무나 분명해서 마음 한 구석이 살짝 데인 듯 쓰렸다.


나는 동물병원엘 가서 수의사에게 개의 품종을 물었다. 수의사는 개를 이곳저곳 살피더니 "말티즈, 코카스파니엘, 그리고 그 외의 잡종이 섞인 것 같네요."라고 했다. 맙소사. 앞으로 품종을 묻는 사람들에게 "얘는 말티즈, 코카스파니엘, 그리고 여러 잡종이 섞인 개예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몹시 귀찮은 일이었다. 나는 곧 그 귀찮은 질문을 끊을 수 있는 대답을 생각해냈다.


"유기견이었어서 잘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잠시 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이내 제 갈길을 갔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