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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Feb 15. 2018

우리에게 남은 시간

네가 나이 들어 딱 하나 좋은 이유


개를 씻기려고 물을 튼다.

물줄기에 숨어있던 검은 반점이 수두룩 드러난다.


'언제 이렇게 나이 든 거야.'

개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다, 괜찮다 말해본다.


나만이 너를 곱게 씻길 수 있다.

나만이 너의 마음 달랠 수 있다.


늙은 개는 남은 힘을 다해

털끝에 물기를 털어낸다.


지난 날,

네가 버려졌을 서울 어느 길거리에

아픈 기억도 모두 다 털어버렸기를

잠시 바라본다.


버려졌던 기억마저 세월에 거뭇해져

네 기억의 첫 줄에 내가 있기를 바라본다.


네가 나이 들어 딱 하나 좋은 이유다.





"만날 그렇게 개가 10살이라고 말하면 어떡해."


남편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종종 사람들이 개가 몇 살이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몇 년이나 "10살이요."라고 말해왔던 차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지적을 해줬지만 늘 그때뿐, 해가 바뀌면 나는 또다시 같은 대답을 꺼내놓았다. 나는 개의 나이를 세기 귀찮았던 걸까. 개가 영영 나이 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집 개가 몇 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날부터 셈을 해보면 딱 13살이다.  그러나 14살, 15살일지도 모를 일이다. 늙은 개만이 제 나이를 알 테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 말이 없다. 책을 찾아보니, 중형견 수명은 15살 즈음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 언저리에 아슬하게 앉아있는 나의 개는 정작 제 나이에 심드렁해 보인다. 개는 지나간 날도, 돌아올 날에도 관심 없다. 그저 오늘, 이 따뜻한 집 어딘가에 조그맣게 똬리를 틀고 누워 있을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개 나이를 세는 법을 찾아보았다. 우리 집 개는 사람 나이로 80세 정도라고 한다. 개의 나이는 사람과 달라 셈하기가 꽤 복잡하다. 개의 1년은 사람의 1년과 다르다. 노견의 시계는 사람의 그것보다 대략 7~8배 정도로 빠르게 간다. 내가 아무리 개와 나란히 걷는다 한들, 개는 이미 나보다 일고여덟 걸음을 앞서 가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새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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