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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Feb 22. 2018

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말 잘 들어서 착하다는 말.


옳지, 착하다.


당신이 그런 말 할 때

나는 기분이 좋아져요.

어쩐지 조금 우쭐해지기도 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걸로 당신 마음이 좋아진다면,

앞으로도 착하게 지낼게요.


당신의 기분이 좋다면,

난 그럴 거예요.


당신을 무척 좋아하니까요.





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와 개는 초록이 수북한 공원을 찾아 걸었다. 볕이 뜨거워서인지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있을 뿐, 인적이 드물어 개와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우리는 조용조용 걸었다. 그러다가 운동화 끈이 풀어지는 바람에, 나는 잠시 앉아 신발 매무새를 고쳤다. 개는 목줄을 두르고 나에게서 서너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깨갱깨갱 울었다. 뒤돌아보니 지나가던 남자가 개를 발로 걷어 차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마치 축구공을 차듯 개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달려가서 그 남자를 붙잡고 삿대질을 했어야 했다. 왜 남의 개를 발로 차느냐고. 똑같이 그 남자를 발로 차 줘야 했다. 하지만 스쳐가는 남자의 눈은 어렴풋이나마 무척 흐렸고, 어두웠다. 손에는 기다란 막대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 들린 검은 봉지에서는 소주가 분명할 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나는 돌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개가 바르르 떨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그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남자가 공원을 벗어나 마침내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귓가에 짤랑짤랑 병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했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을 구매하시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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