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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Mar 01. 2018

공동육아 (feat. 개)

41개월간의 가정보육을 마치며


딸이 우유를 잔뜩 엎지른다.

당황한 티 내지 않고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말하는 일.


개가 화분에 핀 꽃을 다 따먹었다.

큰소리 쳐봤자

늙은 개는 가는 귀가 먹었으니,

"그게 그리 맛있디?"

하고 그냥 웃어버리는 일.


블록이 자꾸 무너진다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괜찮아, 다시 쌓으면 되는 거야."

사분사분 일러주는 일.


그러다보니 저절로

세상에 괜찮은 게 더 많아지는 일.


그렇게 엄마가 되고

사람이 되는 일,


엄마의 일.





나의 개



어렸을 때 집에서 키웠던 개들은 사실, 가족 모두의 개였다. 개를 예뻐하는 일은 나의 몫이었지만, 개에게 밥을 주고, 배변을 치워주고, 목욕을 시키는 궂은 일들은 보통 엄마의 몫이었다. 나는 개를 예뻐만 했지 고단한 일은 하지 않았다. 모른 척했다는 게 맞다. 개들이 죽고 사라져도 나는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종종 울었다. 아빠의 눈물을 본 적도 있다. 나는 개를 예뻐했던, 딱 그 정도의 무게만큼만 슬퍼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처음으로 나의 개가 생겼다. 내가 선택해서 데려온 개였다. 온전히 혼자서 개를 돌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개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그제야 알았다. 좋은 사료를 챙기고, 꼬박꼬박 산책을 시키고, 접종을 시키고, 목욕을 시키는 일이 종종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잠시 딴 데 한눈을 팔면 개는 금세 지저분해졌다.  



많은 개들이 내 곁을 스쳐갔다. 개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가벼운 말이었다. 그러나 나의 개는 달랐다. '나'와 '개' 사이에 있는 '의'라는 조사가 마치 목줄처럼 우리를 이어주고 있었다. 나는 이 생명을 죽는 날까지 돌봐야 했다. 개라는 단어가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책임의 무게였다. 그 묵직한 감정은 다행히도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개에게 적당한 산책과 주기적인 목욕은 기본이었다. 개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기형이라 우리는 병원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가끔 호흡을 어려워해서 오밤중에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특정한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사료를 꼼꼼히 살폈다. 모기가 들끓는 여름에는 약을 챙겼다. 나는 점점 돌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더이상 개에게 시간을 뺏긴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쪼개어 개와 나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갔고, 그럴수록 개의 표정은 밝아졌다.  


개를 단숨에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건 개도 마찬가지였다. 개는 한참이 지나서야, 나를 반겼다. 어느 날 내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개가 처음으로 꼬리 치며 현관문 앞으로 마중 나온 날을 기억한다. 그날부터였을 거다. 개를 처음 데려왔을 때 느꼈던, 그 아슬아슬한 감정이 이제 모두 사라졌음을 알게된 것은.



'나의 아기'라는 말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추가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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