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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Mar 08. 2018

오첩 반상을 먹는 개

행주 엄마


                                                                                       


금요일 밤,
엄마는 마지막으로 식탁 위를 쓱 닦는다.
열 다섯번의 식사, 잘도 차려냈다.

다섯개의 간식, 잘도 만들어냈다.


잘했다 애썼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으니
참 잘했어요 하고 빨간색 동그라미 치듯
행주로 식탁을 둥글게 닦아본다.

박박 빨아놓은 행주를 깜박하고
그대로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아이 곁에 눕는다.


딸애 얼굴 들여다보다가
부엌에 둔 행주처럼,

그대로 새우잠 든다.


일어나 아침밥 차리러 부엌에 가보니,
어제 놓은 그대로

행주가 버석하게 말라있다.


애써 펴보려 탁탁 털어보지만,
주름진 행주는 밉게도 말라붙었다.

괜찮아,
오늘은 토요일이야.
하고서 미지근한 물에 퐁당 던져 논다.
이내 행주가 노곤히 풀어진다.


행주가 한 끼 쉬는 날이다.
엄마도 한숨 돌리는 날이다.




 

첫 직장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늦은 저녁, 퇴근을 하면 개가 현관문 앞에서 코를 박고 있었다. 개는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와 내게 안겼다.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고 한바탕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 외할머니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며 꼭 한 말씀을 얹으셨다.

 

"걔가 하루 종일 기다렸어.
네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는 소리를
또 어떻게 알고 문 앞으로 뛰어가네."

우리 집은 13층이었다. 개는 온종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엘리베이터에 귀를 쫑긋거렸다. 오후 7시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를 알아채고 벼락같이 마중 나왔다. 개는 그리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누군가를 하루 종일 기다려본 적이 었었던가. 개는 매일같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개는 도통 사료를 먹지 않았다. 퇴근해서 개 밥그릇을 살펴보면, 아침에 준 사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집에 돌아 올 때 까지 개는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나는 외할머니께 개가 사료를 먹을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 흐뭇한 얼굴로 알겠노라 하셨다. 할머니는 종일 자식들 먹일 걱정만 하는 분이셨다. "배 고프지?"라는 말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시곤 했다. 할머니에게 한 끼를 거른다는 건 곧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기댈 데는 할머니뿐이었다. 그날부로 할머니의 레이다에 개도 걸려들었다. 나는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개는 점점 피둥피둥 살이 올랐다. 할머니께서는 개가 "아아주", "너어어무" 잘 먹고 있다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사료는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털에서 반지르르 윤이 났기 때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깥일에 집중했다.






이어지는 글과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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