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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Mar 22. 2018

눈물 닦아주는 개

 시리얼을 손에 쥐어주는 아기

                                                 



개에게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개는 눈물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웃을 일도 울 일도 끓어 넘치게 많았던 20대 초반의 내 곁에 그 개가 있었다. 개는 널뛰는 내 감정에 맞추어 덩달아 바삐 움직였다. 나는 치사하게도 울 때만 개에게 기댔다. 모두가 잠든 밤, 시끌벅쩍한 노래를 틀어놓고 이불 속에서 몰래 울고 있으면 개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눈물을 핥아댔다. 화장실에 숨어서 울기라도 하면 문을 벅벅 긁었다. 개는 악착같이 내 슬픔을 쫓았다. 그때의 나는 약은 약사에게, 그리고 눈물은 우리 개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무슨 울 일이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과했던 시절이었다. 그땐 그랬다. 나는 뭐든지 서툴렀다. 집을 떠나와 타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도, 남들 다 하는 공부를 따라가는 일도, 아득한 미래도 버거웠다. 관계에 지쳐서 울었고 가족이 그리워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울기 좋은 날'이라고 정하고, 외출했다가 집에 오자마자 마구 울어버린 날도 있었다. 눈물이 <긴급 땡처리>만큼 값쌌던 때였다. 눈물자국으로 베개 솜이 온통 누렇게 뜰 정도로 밤마다 그 짓을 했다.


개는 그런 나를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실 울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우리 개였다. 20대의 평범한 여자애와 유기견 보호소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극적으로 입양됐지만 아직도 세상이 낯선 개, 우리 둘 중에서 위로받아 마땅한 자는 내가 아니라 개였다. 개에게는 보호소에서부터 달고 온 진한 눈물 자국이 낙인처럼 박혀있었다. 손수건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나였다.


내가 우는 시늉이라도 하면, 개는 제 집에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그러고서는 방구석에 처박혀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만의 슬픔에 빠져있는 미숙한 보호자를 달래주었다. 개는 두 발로 서서 남은 두 발을 내 가슴에 얹었다. 조그만 발바닥이 무척 따뜻했다. 개 발바닥이 청진기가 되어 내 몸 이곳저곳을 지그시 눌렀다. 차갑지 않은 진찰이었다. 말없는 위로였다.


개는 내 얼굴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핥아댔다. 어찌나 정성스럽게 핥는지 나는 이내 민망해졌고, 그 민망함은 한바탕 폭소로 이어지곤 했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있어야 할지, 그만 좀 하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웃었다. 그러다 보면 울었던 이유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개에게는 큰 일을 작게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치유 능력이 있었다. 개는 진지하고도 애달픈 표정으로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개는 내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다 핥아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도통 울지를 않는다.

눈물이 금값이 됐다. 아무래도 그때 개가 내 눈물의 씨앗까지 모조리 다 말려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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