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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프라이드 엑스포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퀴어 축제는 참가하고 싶어

by 행복의 진수

프라이드 엑스포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성소수자가 아니면서도 이 축제에 부스를 열겠다고 마음먹은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찍어 모은 무지개 미니 사진집이야말로, 이 축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무지개는 거창한 장식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빛의 조각이다. 디자이너는 이 사진집의 기획 의도를 “엉성한 다꾸 같다.”라고 설명했다. 완벽하게 꾸며낸 것이 아니라,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기록. 멋진 사람들만 찾을 수 있는 게 행복이 아니듯, 이 사진집도 일상 속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흔적이었다.

Over the Rainbow 무지개 미니 사진집
무지개 미니 사진집을 보는 독자

첫날 맞은편에는 벨기에팀이 자리했다. 그런데 오후 네 시가 되자 서둘러 부스를 정리하고 퇴근했다. 독일대사관 팀은 다섯 시에, 독일문화원 팀은 다섯 시 스물네 분에 자리를 비웠다. 그 광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한국이 멕시코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는 나라’로 유명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퇴근 후에도 수업을 듣고, 주말이면 북페어에 참가하고, 월요일이면 다시 출근하는 내 일상을 생각하니 대비가 더 또렷했다. 물론 부스를 일찍 닫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지만, 난 언제나 마감 시간을 지킨다. 의외로 막판에 찾아와 책을 사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해외 북페어에 나가더라도 다른 부스를 둘러보는 대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독자들을 기다리는 편이다.


둘째 날 맞은편에는 김상훈 작가가 앉았다. 『비의 여행』을 판매하면서, 책을 산 독자에게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12시 오픈 전에 후다닥 책을 사고 초상화를 그렸다. 펜을 쥔 손끝에서 빠르게 탄생하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그 자리의 따뜻한 공기에 이끌렸다. 책과 그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북페어의 묘미였다.

KakaoTalk_20250825_143544305.jpg 북페어에 가면 항상 초상화를 그린다

퀴어 아티스트 ‘허리케인 김치’는 오른쪽 부스였다. 화려한 옷차림과 유쾌한 에너지로 언제나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양면테이프로 뒷 벽에 붙여둔 사진들이 하나둘 떨어질 때, 이탈리아산 마스킹 테이프를 흔쾌히 빌려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허 선생님이 자리를 비울 때는 내가 대신 손님을 맞이 했다.


왼쪽에는 레즈비언 전문 출판사 ‘움직씨’가 자리했다. 대표님은 알고 보니 대학 선배였다. 작년 각약각책에서도 옆자리였다. 사소한 인연이 이어져 이제는 서로 간식을 챙겨주고, 페어에서 현장 사진을 찍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작은 연대와 우정이 북페어를 만남의 장으로 탈바꿈해 줬다.


행사장은 무척 더웠다. 바깥은 폭염이었고, 안은 에어컨이 고장 나 찜통 같았다. 참가자들은 모두 손부채를 부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이거 성소수자 탄압 아니야?”라는 농담이 들리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크게 웃었다. 더위와 열기에 지쳐 있었지만, 그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었다.


내 부스 위에는 무지개 사진집과 함께 처음 선보인 포토 카드들이 놓여 있었다. 프리즘, 홀로그램, 빛의 파편을 담은 작은 카드들. ‘포토 카드만 사고, 책 판매는 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포토 카드 역시 내가 찍은 사진이고, 결국은 같은 흐름에서 나온 작업이었다. 책을 산 구매자에게는 무지개색 열쇠고리를 선물했는데, 색은 직접 고르게 했다. 일곱 빛깔 스펙트럼처럼 취향도 다양했다. 짧은 선택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는 무척 따뜻했다.

2025 프라이드 엑스포 - 무지개로 가득한 S Family 부스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들과의 거리를 한 걸음 더 좁힐 수 있었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사이에서는 오히려 내가 성소수자였다. 그들은 멀리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책을 만드는 동료였고, 테이프를 빌려주는 이웃이었으며, 더위 속에서 함께 부채질하는 동반자였다. 성적 지향과 취향은 다를지언정, 결국은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곳에 서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성소수자는 늘 우리 곁에 있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웃고, 땀을 흘리고, 무지개를 나누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8월의 어느 주말.
뜨겁게, 뜨겁게 안녕.
처서는 지났지만 여전히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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