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원 개인전 「너의 집」
민예원 개인전 「너의 집」은 물리적인 주거 공간을 넘어, 인간이 ‘살아간다’라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게 만드는 따뜻한 여정이다. 작가는 말한다. “생은 집을 찾는 여정이다.” 그 문장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삶의 궤적을 꿰뚫는 고백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집은 결코 안식처가 아니었고, 대학 진학을 위해 떠난 상경 이후에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늘 가난과 불안이었다. 원룸과 반지하, 고시원 같은 공간을 전전하며 작가는 집이라는 단어를 ‘정착’이 아닌 ‘통과’로 배웠다. 바로 그 경험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다. “나의 집은 도대체 어디일까?”라는 물음은 어느 순간 “너의 집은 어떤가요?”로 바뀌었다. 그렇게 작가는 지난 3개월 동안 서울에서 시작해 경기, 충북, 원주, 전주, 제주까지 열 명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집을 그렸다.
그녀의 시선은 다큐멘터리적 기록자가 아니라, 삶의 온도를 체화하는 여행자에 가깝다. 작가는 각자의 집을 볼펜, 마카, 색연필 등 가장 일상적이고 즉흥적인 도구로 그렸다. 붓보다 덜 정교하지만, 그만큼 손끝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재료들이다. 볼펜의 눌린 선, 색연필의 번짐, 마카의 겹침은 모두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작가는 각 집의 주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물이나 순간을 비중 있게 그렸다. 사랑, 그리움, 기다림, 단념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렇게 사물의 형태로 드러난다.
열 개의 집은 열 개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첫 번째로 작가가 설명한 집은 신혼집이었다. 아직 신혼의 공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아내의 얼굴이 그려진 머그잔, 남편이 쓰는 카메라. 화면 전체를 감도는 분위기는 마치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다정하다. 그 따뜻한 온도는 전시장을 채우는 첫 숨결이 된다.
다음으로 만난 집은 아이들이 사는 집이었다. 집 한구석에 그려진 꽃 모양의 낙서가 작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의 손길이 남은 귀여운 흔적은 고스란히 그림으로 옮겨졌다. 민예원은 그 흔적들을 지우거나 교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색연필과 마카로 그 위를 덧그리며, 아이들의 시간과 함께 집이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그림 앞에 서면, ‘집’이란 어른이 만들어놓은 구조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흔적’임을 깨닫게 된다.
천장이 낮은 집도 있었다. 작가는 몸을 숙여 들어가야 하는 그 좁은 공간을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볼펜으로 눌러 그린 천장의 선들은 조금씩 기울어 있고, 빛이 닿지 않는 모서리에는 짙은 회색이 쌓여 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침실의 온기는 놓치지 않았다. 그 빛을 색연필로 은은하게 채색해, “빛은 항상 어딘가엔가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말없이 전한다.
잠시 머무는 사람의 집에서는, 임시성과 덧없음이 공간의 질감이 되었다. 가구는 최소한으로, 짐은 캐리어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곧 떠날 공간이지만 집주인의 소소한 취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서리 공간, 나무 틀에 간소하게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주거 안정성의 위태로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식물이 가득한 집은 초록색이 싱그러운 그림이었다. 마카와 색연필이 겹친 초록의 층이 화면을 덮고, 크고 작은 화분의 식물들이 서로의 잎을 감싸고 있다. 작가는 그 집을 “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작품 앞에 서면 그 초록의 공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제주 바닷가의 집은 채광이 잘 되는 남향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집주인 덕분에 바닥에는 항상 바닷모래가 떨어져있다고 한다. 바다와 맞닿은 집이라 아랫면은 색연필로 연한 파도를 흩뿌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색연필로 은은하게 번지며, 바다와 공존하는 인간의 조용한 리듬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은 가장 단단한 집이었다. 주인이 직접 짓고, 손수 인테리어까지 한 집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주인은 난로 오븐까지 설치했다. 작지만 취향이 담겨 있는 오롯한 공간이었다.
이렇듯 『너의 집』의 열 장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삶을 통과한 감정의 기록이며, 작가 자신의 결핍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는 타인의 집을 그리며 그들의 삶에 잠시 머물렀고, 그 순간마다 “집이란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공간”임을 배웠다. 볼펜의 얇은 선들이 켜켜이 쌓이며 사람의 마음을 닮은 구조를 만들어간다. 색연필의 번짐은 관계의 온도를, 마카의 과감한 색은 삶의 확신을 드러낸다.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나 역시 내 반지하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낮에는 눅눅하고 밤에는 바람이 스며드는 그 작은 창이, 이상하게도 작가의 그림 속 어느 집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가 타인의 집을 그리며 자신을 찾아갔듯,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나의 자리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완벽한 집을 짓기보다는, 불완전한 공간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나의 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민예원의 「너의 집」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 전시는 집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재의 온도’를 담는 그릇으로 바라본다. 누군가의 신혼의 웃음, 아이의 낙서, 낮은 천장, 덧없는 캐리어, 식물의 숨결, 바다의 수평선, 오븐 난로의 불빛까지—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요?”
작가가 찾아낸 대답은 거창하지 않다. “지저분하고 허름하지만, 단단한 수직선을 꽂을 땅이 있는 곳. 기꺼이 빛을 투과시킬 만큼 하늘거리는 안심을 걸어두는 나의 집.” 그 문장은 민예원 자신이 그린 모든 집의 공통된 마음을 담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머물러도 좋으며, 떠나더라도 흔적이 남는 곳.
나 또한 반지하에서 이 글을 쓴다. 바닥의 차가운 기운과 창문 너머의 희미한 빛이 작가의 그림처럼 교차한다. 어쩌면 작가와 나는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따뜻한, 자신만의 소중한 공간, 그 이름이 ‘집’인 곳을 찾아가길. 그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이 여정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