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원 Nov 30.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20) '독후감'

스무 번째 이야기, '독후감'을 쓰세요, 하면 생각나는 책.


시어머니 명희의 책



많은 책들 중에서 그래도 기억에 박혀 있는 책이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읽어서 일 것이다. 파크리크 쥐스킨트 작품 <깊이에의 강요>이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평론가의 비평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고 그 여류 화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에는 작품을 시작하거나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 나는 깊이가 없어". 그 화가는 결국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그 화가를 죽게 만든 비평가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려고 비평을 한 것뿐인데 스스로를 그 비평의 감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 또 사람의 조언을 너무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말 것. 나는 나의 나름대로의 삶이 있는 것. 비평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여류 화가를 보면서 참 생각이 많았었다.


지금에 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항상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의 글에, 너의 그림이, 너희들의 악기 실력이 못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리 손자 손녀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할머니, 더 열심히 하면 돼요. 왜 그 화가는 죽었대요?" 수지에 사는 손녀는 "저를 태어나게 도와주신 분은 엄마, 아빠예요. 왜 그런 말 때문에 죽어요. 더 멋진 작품을 만들면 될 것을..." 어린 손자, 손녀들의 시선이 더 날카롭고 지혜로운 것에 감사했던 마음이었다. 역시 나의 손자, 손녀들은 마음이 풍요롭구나 생각하면서...



2021년의 책

<아주 보통의 행복> 최인철 교수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노후의 깨닮음을 얻은. 행복이란 소소한 건강한 일상이라는 것을...


아침에 기상할 수 있는 것, 식사를 남편과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말하고 걷고 글 쓰고 이런 소소한 것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손자, 손녀와 대화하고, 웃고, 공부하고, 여행 가고, 춘-하-추-동을 만끽할 수 있고...


행복이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행복이다. 행복에는 사교육비도 신비의 묘약도 없다는 것을... 요즈음 본 책 중에서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책 같아서 너무 좋았다.


아주 보통의 행복 속에서 나는 살고 있다. 행복 재벌(?)이 되어서... ㅎㅎㅎ


2021 11 21 (10 17) sunday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책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선물 받았던 책이다. 아직 아이를 갖지 않았던 부부가 제목에 이끌려 선물했다고 했다. (이제 아기 천사를 맞이 할 그 부부에게 다시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5-6권 정도의 육아서를 읽었는데 가장 마음에 품게 되었다. 얼마 전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박혜란 작가가 출연하여 또 한 번 펴게 되었는데 역시나 따뜻했다.


새삼 놀랐던 점은 남편과 아이에 관해 대화를 꽤 많이 하는 편인데 그 대화의 바탕에는 책의 큰 틀의 생각들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육아서나 어느 처세서가 당연한 정답만을 말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나의 생각의 흐름과 방향을 가지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사실 계속 일을 하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돈을 벌던 나에게 출산과 전업주부의 자리는 지레 겁을 먹게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마냥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와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는 일이 재밌었고, 둘에서 셋이 되는 과정에서 바뀌는 생각들에 남편과 피식 웃는 것도 좋았다. 옷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우리 옷은 뒷전이고 계절 별로 아이의 옷을 검색하고 찾기 바쁘니 참 재밌다. 큰 틀에서는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문득, 가끔 내 생각을 파고드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을까?', '일은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하면 아이와 떨어진 물리적, 정신적 시간을 내가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는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들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내어 최소 1만 시간만 투자한다면 무슨 일을 못해 내랴. 새로운 도전과 투자 없이 그저 엄마 이전의 경력만 내세우면서 사회가 나를 쉽게 받아 주겠냐면서 미리 주저앉아 버리는 그런 바보짓은 그만두자. 아이를 억지로 키우려 하지 말자. 엄마가 크면 아이도 따라 큰다.' -p.161


와닿았다.

육아 관련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도 모두 아기 엄마이고, 아이를 키우게 되며 열린 새로운 세상에 이전의 일을 운운하며 아쉬워 하기에는 나의 엄마로서 쌓아가는 경력이 아깝지! 그리고 나는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일을 하고 싶으니- 그걸 찾기 위한 시간들로 전업주부는 정말 꿀이지 않은가. 그리고 만약 워킹맘이 된 내가 반대의 시선으로 후회와 아쉬움 없는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아이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늘 후회로 남겠지만, 나는 그저 나와 같이 인생을 걷는 아이의 엄마이고 싶다.


'아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햇살과 바람소리에 행복을 느끼는 부모, 가족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부모,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노래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부모, 그 부모를 보는 아이는 행복이 뭔지 저절로 배우게 된다. 아니 온몸으로 행복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행복한 아이가 성공한 아이다.' - p.151


 이제 20개월이 된 아이는 세상에 신기한 게 많다. 비가 내려 베란다 우수관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한참을 쭈그려 앉았다가, 엎드렸다가 하면서 지켜보며 신나 한다. 비 온 후 생긴 웅덩이들을 첨벙첨벙 밟고 지나면서 그렇게 행복한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집에 돌아와 스스로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가져다 놓으면서 짓는 뿌듯한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그 모습을 보는 나와 남편은 행복감에 사르르 녹는다. 사소한 행복, 아이가 지금 주는 소박한 행복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어도 여전했으면 좋겠다. 함께 핑크퐁 노래에 춤을 추고, 방방 쩜프를 엄마 아빠가 더 신나 하고, 맑은 하늘에 끊임없이 감탄하는 우리 가족이 여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이가 "오늘 진짜 행복하다, 그치?!"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연말을 보내는 다짐서 같은 글이 되었지만, 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 더 단단하고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나 나름의 행복한 엄마가 되련다.


나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9) '시공간을 초월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