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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Dec 23.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21) ‘겨울’

스물한 번째 이야기, 내 삶에 겨울이라는 의미


시어머니 명희의 겨울 이야기



 나는 겨울에 결혼을 했다. 1975년 12월 28일 일요일 12시 30분.

겨울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흰 눈처럼 아름답고 얼음처럼 투명한 미래를 설계하며 설레었던 그 만남, 그 남자와 같이라면 행복할 것이다 믿었고 그 시절 겨울은 따뜻했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녹록지 않았다. 삶의 겨울이 주는 의미.

나는 항상 mememto mori를 마음에 간직하면서 삶을 살았다. 죽음을 기억하라!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 행진할 때 노예를 뒤따라오게 하며 외친 memem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지탱해 나갔다. 다년간에 세월이 겨울(?)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나는 삶을 이어갔다. 하얀 눈이 예쁘게 소복이 내려앉은 적도 있었고(?) 해빙이 되어서 물이 졸졸졸 흐르는 때도 있었고, 얼음이 꽝꽝 얼었어도 그곳에서 스케이트도 타면서 웃었던 아름다운 때도 나름 있었다.


그런 세월 그런 시간을 지나 현재를 잘 보내고 있다. 나는 인생의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노년) 따뜻한 벽난로에서 도란도란 담소하고, 동백꽃을 보러 제주도도 가고, 눈 덮인 덕수궁 돌담길도 걷고, 추워서 잠을 설칠까 봐 오리털 이불도 장만한다.


내 삶이 주는 겨울에 의미는 그래도 지나온 긴 세월 뒤돌아 보면 그래도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했었고 포근하다. 지금 나는 따뜻한 인생의 겨울을 살고 있다. 지금 나는 눈 쌓인 마당을 쓸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삶의 겨울이 따뜻한 것을 느끼면서. 마친다!


2021 12月 19 (11月 15) 토

눈이 펑펑 snow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겨울 이야기


 겨울을 참 좋아한다. 돌돌 말아 올린 포근한 목도리, 그 사이로 콧구멍에 차디찬 바람이 차오르면 콧물까지 얼얼해지는 느낌이 재밌어서 좋아했다. 가을의 끝자락에 겨울 냄새가 스미면 괜스레 두근두근 해지기 시작한다.


지난 나의 이십 대의 겨울들은 겨울 시즌에 미친 듯이 바쁜 매장을 관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내거나 스키장에 박혀 있는 시간들이었다. 화려하고, 바쁘고, 눈에 뒤덮여 있는 시간이,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움이 겨울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의 겨울은 이렇게 평온하고 차분할 수가 없다. 겨울이 오는 냄새도 온전히 맡고,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겨울을 설명해주고, 겨울임에도 바람 없이 따뜻한 날은 아이와 함께 콧물을 흘리며 놀이터에서 뛰어논다.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를 보고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반짝반짝의 표현) 신나 하는 아이를 위해 작은 트리를 샀다. 남편은 집 안에 두는 트리를 처음 샀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 이후로 집에 트리를 꾸미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같이 전구를 두르고 오나먼트를 달며 싱글벙글 웃는 아이의 얼굴에 우리가 신이 난다. 잠에서 깨고 난 후나 외출 후 들어와서는 달려가 반짝반짝을 먼저 켜고 바라보고 있는다. 아이에게 이번 겨울은 반짝반짝을 실컷 볼 수 있는 날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겨울이다. 계절이 하나하나 바뀔 때마다 아이가 보고 느끼는 게 많아질수록 더 튼튼한 따뜻함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겠디고 괜히 다짐하는 겨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짝반짝 조명이 화려한 도심도 구경가야 하고, 극동캠도 하러 떠나야 하고, 눈썰매도 타러 가야 하고, 4살 정도 되면 스키도 가르쳐야 하고, 무더운 12월을 맛보러 외국 여행도 가야 하니 앞으로 새로운 겨울들만 남았다는 게 설렌다.


이제 계절을 떠올리면 '아이와 무얼 하지?'라는 생각부터 하는 영락없는 엄마가 되어 지내는 나도, "여기 갈까? 좋아하겠지?"라고 여기저기 찾아보는 남편도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방법이 달라진 게 즐겁다.


아이에게 겨울이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닌 여름만큼 다이나믹, 행복이 꽉 차 있는 계절로 기억되길 바란다. 아이 덕분에 나와 남편이 동심으로 돌아가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찬 것처럼.


아이의 첫눈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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