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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Sep 01. 2023

@소통잡화점 920 <아랫사람의 소통원칙>

@소통잡화점 920

<아랫사람의 소통원칙>     


1.

“학교 끝나면 곧장 집에 오라고 했지? 말도 없이 놀다오면 걱정한다고 했어 안했어!!”

초등학생들이 혼나는 레퍼토리는 늘 한결같다. 세상은 점점 험해지고,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부모 마음은 항상 조마조마하다. 회사 상급자의 심정도 대략 비슷하다.     


2.

“저도 엊그제까지 대리였지만, 신입사원들 보면 늘 불안불안해요.”

아랫자리를 거쳐 리더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팀원들의 업무력과 실수패턴이 머릿속에 훤하다. 업무 지시할 때 눈앞에서 알았다고 해도, 속으로 딴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니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끊임없이 반복한다.     


팀원입장에서는 잔소리가 반복되니 그저 지겨울 뿐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할 텐데, 왜 그리 못미더워 하시는지 이해가 안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이 예측했던 바로 그런 사고를 딱 치고야 만다. 고개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역시나 잔소리는 듣기 싫다.     


3.

관리하는 자와 관리당하는 자의 소통원칙을 기억하면 좋다. 관리자는 구성원이 알아서 모든 일을 척척 잘 해내리라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무조건 실수하고 사고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기대한다. 자신도 그랬으니 너무 당연한 일이고, 그 자체로는 비난하지도 않는다.     


관리자가 원하는 희망사항은 딱 한가지뿐이다. 어떤 사고를 쳐도 좋으니, 제때 수습할 수 있게만 해주면 좋겠다. 학교 끝나고 친구와 놀고 싶으면 놀아라. 대신 지금 아무개와 어느 놀이터에서 노는지 말을 해야, 놀이터 먼발치에 앉아 지켜보기라도 한다. 그네에서 떨어져 무릎이 다쳐도 바로 조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4. 

유능한 신입사원의 조건은 딱 한가지다. 닥치고 보고하기다. 화장실 갈 때도 알린다는 마음으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리면 된다. 어제 팀장님이 맡기신 업무는 지금 어디를 어떻게 하고 있다며, 하루 이틀마다 수시로 간단보고를 반복하면 좋다.  

    

팀장님이 지겨워 할 만큼 그렇게 보고하는 행동이 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팀장입장이 되어보면 금방 안다. ‘아, 김대리는 일이 느리든 말든, 시키지 않은 일은 절대 벌이지 않아. 수시로 보고하니 대형사고 치는 일도 없지. 시킨 일은 정확히 해내는 타입이야.’ 신입사원에게 이 이상 기대할 팀장이 있겠는가.     


5. 

세상 모든 신입사원들에게 고한다. 그대들은 사고를 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혼자 알아서 완벽하게 해내려 할수록 일만 더 커진다. 운명을 받아들이시라. 대신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상급자가 완벽하게 수습할 수 있게만 처신하면 된다.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말고, 이상하면 질문하며, 끊임없이 보고하라.   

  

팀장은 본인 경험상 신입사원 상상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황당한지 잘 안다. 무조건 시킨 대로만 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지만 말고, 예상되는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미리 짚어주자. 그 중에 하나가 걸리면 그대로 행동하며 신입사원은 성장한다. 신입은 시킨 대로 일하는 인공지능 AI가 아니라, 머지않아 내 자리를 이어받을 미래의 팀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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