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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Nov 28. 2023

@소통잡화점 982 <나는 나의 변호사인가 검사인가>

@소통잡화점 982

<나는 나의 변호사인가 검사인가>     


1.

“아,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말씀 드릴게요.”

김대리는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항상 이런 식이다. 본인이 처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만 하면, 다들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공감해주길 기대한다. 별말 없이 이해하고 넘어가면 자상한 F형, 끝까지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깐깐한 T형이라고 몰아 세운다.     


2.

남이 내 잘못을 거론하는 순간 나는 이미 피고인이다.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거나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다들 나를 째려보면서 질책하는 눈치다. 그 상황이 너무 싫다. 가뜩이나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마음이 무거운 데, 재판까지 받으려니 더 불편하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어쩔 수 없다. 내 잘못은 둘째 치고 일단 지금의 위기상황부터 벗어나야 겠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으니, 내가 나의 변호를 시작한다. 가만 따지고 보면 내 실수도 결국 잘해보려다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일 뿐이다. 변론만 잘 펼치면 운좋게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3. 

지구상에서 영원한 내 편은 나 자신뿐이다. 자기가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는데, 그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 아무리 공공의 적이라도 국선변호인이 도움을 준다. 대신 그 말을 하는 태도와 강도에 따라 배심원들 입장은 변한다.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느냐, 고개 뻣뻣이 들고 무죄를 주장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끝까지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한사코 본인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 도리가 없다. 도와주고 싶어도 돕기가 어렵다. 오히려 압박하는 강도만 점점 높아진다.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괘씸죄가 추가로 적용되기 시작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면서 인민재판으로 번지기도 한다.     


4.

“팀장님, 이번 일은 제가 판단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저 때문에 다들 고생하시게 되어 너무 죄송합니다. 저는 이러이러한 쪽으로 잘해보고 싶었는데, 저런 변수는 예상을 못했어요. 다음부터는 더 안전하게 조심해서 일처리 하겠습니다.”     


변명하면서 살짝 하소연을 섞더라도, 사과와 인정의 논조를 훼손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 정도 멘트에 불같은 화를 내겠는가. 잘못을 인정했다고 당신에게 손가락질하며 업신여길 리도 없다. 오히려 솔직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덤으로 얻는다.     


5.

“혹시 제가 빠뜨린 부분은 없었나요?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요?”

자기발전형 김대리는 늘 자기 자신을 취조한다. 그 정도가 정말 최선이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다른 방식 또는 더 나은 방법은 없었는지 항상 피드백을 구하러 다닌다. 자발적으로 검사완장을 차고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게 군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겨냥하고 있으니,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김대리는 항상 배고프다.      


이런 김대리가 실수를 저지른다 한들, 팀장님이 무슨 잔소리를 하겠는가. 이미 스스로에게 가혹한 처벌을 마쳤을테니,더 다그칠 이유가 없다. 이미 재판은 끝났다. 남은 일은 동료입장으로 돌아가, 함께 사건을 재구성하며 교훈만 얻으면 된다. 팀장님은 보석같은 피드백을 쏟아내고, 김대리는 오늘도 쑥쑥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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