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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Jan 05. 2024

@1005 <우울해서 파마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1005

<우울해서 파마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1.

“어제는 너무 우울해서 파마에 염색까지 하고 왔어.”

당신은 어떤 말로 대처하겠는가. 혹시… 파마에 염색까지 했으면 돈 많이 들었을 텐데, 어디서 했는지 묻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상대방의 엄청난 잔소리 세례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이 문장은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


2.

“정말 억울하네요. 어디서 했느냐 얼마 들었느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 주었는데 왜 화를 내는 거죠?”

엉뚱한 키워드에 밑줄을 그어서 그렇다. 출제자가 생각한 의도를 놓쳤다. 핵심은 ‘파마’, ‘염색’이 아니라, ‘우울해서’다. 왜 우울했는지, 미용실 다녀오고 마음이 좀 풀렸는지 물었어야 한다.     


아직 인정 못하겠다 하는 분들을 위해 2차 시기를 준비했다. 근무 중 배우자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옆 차선에서 휙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가 나서 앞문짝이 다 긁혔어.” 보험회사에 전화는 했느냐, 경찰은 불렀느냐, 상대가 목 잡고 드러눕지는 않았느냐 이런 말부터 나오면 안 된다. 첫마디는 “많이 놀랐겠네,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이어야 한다.     


3.

이런 상황을 두고 MBTI T의 사고형과 F의 감정형 차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나는 소통 과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일부러 대화나 전화로 말을 걸었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특별한 해결책을 기대했다면, 모호한 문장 대신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제 갔던 미용실이 좀 비싸던데, 저렴한 미용실 알아?”, “자동차 보험회사 전화번호 좀 알려줘.”     


요구 조건 없이 평서문으로 자신의 상황을 주욱 늘어놓았다면, 수리영역이 아니라 언어영역일 가능성이 많다. 자신이 처한 감정적인 변화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구하는 메시지다. 이럴 때는 구태여 위로까지 전하지 않아도, 잠자코 들어주는 자세만으로 충분하다.     


4. 

말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 단어를 뒤섞어 문장을 전달하고는, 함정을 피해 원하는 대답을 해주길 바라면 상대는 너무 피곤하다. 정답률 19% 초고난도 문제다. 수능에서도 킬러 문제를 없애는 마당에, 이런 화법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솔루션 대신 공감이 필요하면 본인 마음에 대한 표현을 위주로 전하라. 파마, 염색, 옆 차선, 앞문짝 상대방이 헷갈릴만한 단어는 싹 빼고, 딱 중요한 단어만 남겨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좋다. 당신 말을 듣는 상대방도 나름 바쁜 입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제 너무 우울해서 미용실 다녀왔어.”,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서 지금 처리 중인데 너무 놀랐어.”     


5.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상대방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바쁜 와중에 전화받았는데, 핵심 위주로 해결책부터 알려주려는 자세가 그리 큰 잘못은 아니다. 또한 지금 내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문자 대신 전화부터 걸어야만 했던 상대의 다급한 심리상태도 이해할만하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어.”

응답하는 입장에서 아직 소통에 대한 훈련이 부족할 때 이 문장을 적극 활용하라. 공감은 잘 못하겠고, 솔루션을 던지면 한소리만 들으니 어쩔 줄 모르겠다 할 때 쓰면 좋다. 일단 그랬구나 하고 나면, 상대방이 후속 멘트를 알아서 이어간다. 방향이 눈에 보이면 물 흐르듯 슬쩍 묻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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