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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Feb 09. 2024

@1030 <내 인생의 좌석등급을 퍼스트 클래스로~

@1030

<내 인생의 좌석등급을 퍼스트 클래스로 끌어올리려면>     


1.

“어? 요즘 아무개 할머니 안 오시네?”

중간중간 환자분 차트를 정리할 때가 있다. 지난 한두 달 다녀가신 환자분들 중에 관심가져야 할 분을 찾아보고 경과가 궁금하면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한다. 못 뵙던 사이에 큰 수술을 한 분도 계시고 너무 좋아져 날아다니는 분도 계신다. 아주 가끔은 안타까운 소식을 확인하기도 한다.     


2.

일단 건강보험 자격부터 조회해 본다. 어느 날짜 이후로 자격이 중지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면 가슴이 철렁한다. 99.9%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구태여 전화로 확인하지 않아도 다 안다. 차트 정리를 마무리하고 창고로 보낸다. 마지막으로 지난 기록을 주욱 살펴본다.      


‘왼쪽 무릎 안쪽도 아프다고 하심, 다음에 치료해 드릴 예정.’ 

몇 달 전 마지막 다녀가신 날 내가 써놓은 내용이 보인다.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잘 치료해 드렸는데, 다 끝나고 나오시면서 한마디 하셨다. “아차차, 즈기 선상님요. 내 요기 무릎 안쪽도 아픈데 깜빡 했으요. 내일 오면 같이 좀 봐주이소, 호호호.” 내일은 없었다.      


3.

“다음에 밥 한번 먹자, 꼭이야.”

독일 사람한테 이런 멘트하면 큰일 난다. 나라에 대한 이미지 그대로 상대는 갑자기 정색한다. 몇 일 몇 시에 어디서 만날지 당장 정하자고 덤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음’이라는 단어를 쓴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다지 신경도 안쓰는 가벼운 인사말이다.     


이제는 안다. ‘다음’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음에 먹기로 한 밥을 다 청산하려면 오늘부터 하루에 10끼씩은 먹어야 죽기 전에 ‘밥 빚’을 남기지 않을 듯하다. 서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공약은 하나 마나다. 꼭 봐야 할 사이라면 지금 당장 길거리에서 만나 잠시 탕후루라도 나눠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편이 낫다. 

    

4.

언제부터인가 명절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번 명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친가든 처가든 어느 순간 누군가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다. 오는 순서와 가는 순서는 전혀 다르니, 꼭 나이많은 어르신들만 떠올리면 안 된다. 나라고 예외일 수도 없다. 50이 넘고 나니 어느새 동기나 후배들 부고까지 간간이 듣는다. 

     

꼭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변수는 많다. 정말 사람 일은 앞 일을 모른다. 오늘 누군가와 하하 호호 웃고 즐기며 대화한 그 시간이, 내 남은 평생 그 사람과의 마지막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골백번도 더 만나 히히덕 거리며 언제나 내 곁에 머물 줄 알았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싸늘하게 변해 철벽을 치며 나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5.

‘있을 때 잘하자.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오늘을 즐기자.’ 

결국은 모두 같은 맥락의 조언들이다. 매 순간 광속으로 달려가는 내 삶의 속도와 창밖 풍경에 무심해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백발노인이 되어 있다.      


평생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큰 맘먹고 퍼스트 클래스 끊어 파리로 날아간다고 상상해 보라. 승무원이 갖다주는 물컵의 색깔까지 신기해 보인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을 종류 별로 모두 깔아달라고 요청한다. 어느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 매 순간 사진을 찍으며 흥분된 표정이다. 당신 인생의 좌석 등급을 결정짓는 사람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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