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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Mar 21. 2024

@1059 <냉정해야 할까, 아니면 열정적이어야 할까>

@1059

<냉정해야 할까, 아니면 열정적이어야 할까>     


1.

“병원 갔다 오셨어요? 제가 대학병원 꼭 가시라고 했잖아요.”

허리 아프다고 오신 환자분 증상이 심상치 않으면 나는 의뢰서에 소견서까지 바리바리 챙겨 큰 병원 꼭 가시라고 신신당부한다. 반응이 뜨뜨 미지근하면 왜 지금 이렇게 조치해 드리는지 일장연설을 다시 한번 더 한다. 며칠 이내 연락이 없으면 가끔은 전화도 해본다.     


2.

경험상 90%는 내 말대로 따르지 않으신다. 기어이 본인 의지대로 처신하시고야 만다. 약국에서 진통제 사고 그냥 버티신다. “원장님 실력 좋으시니까 그냥 허리 치료만 잘 해주시면 될 텐데요. 그 병원 의사랑 따로 아는 사이에요?” 가끔은 이런 말까지 들을 정도다.      


“저... 원장님 말씀이 맞았네요.”

참다 참다 며칠이 지나 결국 응급실로 가셨다고 한다. 한밤중에 너무 아파서 119까지 불렀는데 결국 내 예상대로 결석이 맞았다. 충격파로 깨고 고생고생한 뒤 이제 퇴원했다며 이실직고하러 들르셨다고 한다.     


3.

환자를 볼 때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돈이 안 되더라도 그 환자분에게 꼭 필요한 내용은 어떻게든 알려드리고 싶지만 설득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직 젊구나, 다 부질없어. 그렇게 신경쓴다고 고마워 하시지도 않아. 할 만큼 하고 나머지는 환자분이 알아서 하시도록 내버려둬.” 또 다른 친구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충고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내 돈 들여가며 환자분 들쳐없고 당장 병원에 달려갈 상황이 아니라면 어디까지나 제3자 입장이니 말이다. 가끔은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하느라 오히려 내 설명이 잘 안 먹히나 싶기도 하다. 환자분이 괜히 겁을 먹거나 나에게 무슨 숨은 속내가 있나 의심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4.

얼마나 냉정해지고 얼마나 열정적이어야 할까.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노선을 정한다. 그동안 겪은 과거의 경험에 따라 현실적으로 냉정을 추구하는 사람은 정해놓은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아름다운 거리감을 유지하며 본인을 철저히 방어한다.     


열정을 택하는 사람은 마음의 소리를 따른다. 차가운 이성으로 요리조리 셈을 따지는 행동은 적성에 맞지 않다. 옳다는 생각이 들거나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오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뒷수습이 곤란해질지도 모르지만 절대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본인에게 큰 도움 될 행동은 아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5.

답은 너무 뻔하다. 냉정만으로 열정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복잡다단하다. 냉정 한 스푼 반에 열정 두 스푼 알맞은 레시피가 중요하다. 살면서 처하는 상황마다 미묘하게 배합을 조절해가며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야 한다. 나에게 상대를 맞추기보다 상황에 알맞게 내 처신을 조절하는 식이다. 

    

그런 상황마저 양쪽 모두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다. 냉정이들은 그 정도 남과 얽히는 일도 싫고, 열정이들은 비겁한 타협으로만 느낀다. 영화에서 아오이와 준세이는 끝없는 고민속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아름다운 피렌체를 배경으로 각자 아픔을 겪으며 성장한 뒤 마침내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한다. 오늘도 나는 갈등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디쯤에 멈추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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