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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Mar 29. 2024

@1065 <선은 끝없이 자신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1065

<선은 끝없이 자신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1.

“전부 틀렸고 당신 말이 맞다구요? 어디 증명해 보시죠.”

“증거를 보여드려도 안 믿으시니 참 답답하네요. 게다가 벌까지 주겠다고 하시면 더 버틸 재간이 없구요. 그냥 제가 틀렸다고 칠게요.”

안타까운 마음에 법정을 돌아 나오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2.

악은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가지만, 선은 끝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언뜻 부당하게 보일지 몰라도 인간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보려는 사람은 늘 거센 저항을 이겨내며 손해까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드라마 마지막 회가 되면 주인공이 모든 비리를 밝혀내고 악당들은 감옥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망가진 삶까지 저절로 복원되지는 않으며 신념을 구현하느라 치른 대가는 너무 크다. 처음부터 손익분기점을 따지고 시작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힘든 과정이 될 줄은 몰랐다.     


3.

그나마 주인공 본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 사람을 믿고 따르는 주위 사람은 어떤가. 그 숭고한 뜻을 지지하여 기꺼이 손을 내밀고 동참했지만 주인공만큼 확신에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조금의 수고는 감수할 수 있어도 선을 넘나드는 큰 희생이라면 고민이 된다.      


소신이 있는 사람은  명분에만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현실감각도 중요하다. 드라마 속 김사부가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의료진 월급도 못 챙겨준다면 과연 합리적인 고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선의라도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을 때만 빛을 발한다.     


4.

악이 걸어가는 행보가 비교적 순조로운 이유가 있다. 일단 악이라는 말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순자가 성악설에서 말한 ‘악’은 사악하고 나쁘다는 의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타고난 본성 그대로인 야생 상태를 ‘악’이라고 부른다. 그 악을 다듬고 조련하여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악’은 이기적인 본능이 힘의 원천이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그 당연한 행동이 악의 근원인 셈이다. 본능은 생존과 연결되는 욕망이니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놓고 거스르기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 선을 이룬다.      


5.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판단보다, 대충 마무리한 뒤 놀고 싶다는 본능의 마음이 더 강할 때가 많다. 고차원의 인정욕구 성취욕구를 가진 사람은 예외겠지만, 그런 높은 수준의 욕망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수의 선구자들이 사람들을 다독이고 어깨동무하며 같이 끌고 나가야 선을 이룬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되면 어느새 본능 쪽으로 눈이 돌아간다. 그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고 선을 향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계속 증명해 나가야 한다. 잠시라도 제자리에 멈추면 그 즉시 본능의 힘에 압도되고 악의 블랙 홀에 빠져든다. 누구든 굳은 결심을 하지만 3일 이상 본능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작심은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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