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May 06. 2024

@1091 <문맥에 어긋난 희한한 단어를 들으면~

@1091

<문맥에 어긋난 희한한 단어를 들으면 질문부터 하자>     


1.

“저희 엄마 어깨가 아프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요.”

“다치셨거나 아프실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을까요?”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요, 아마 봉 잡고 일어서시느라 그런가 봐요.”

듣고 싶은 대로만 들으면 뻔히 들리는 이야기도 강제로 무음 처리된다.     


2.

이 정도 대화는 한의원이나 정형외과에서 아주 흔하다. 중년이상인 분들은 다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어깨가 아플 수 있다. 젊으시면 50견을 걱정할 수 있고 더 고령이라면 퇴행성 이상이 기본이다. 의료진도 “아, 예...” 별 신경도 안 쓰고 대화를 마무리한 뒤 묵묵히 정해진 기본 치료를 시작한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아무리 50견이나 퇴행성이라 하더라도 자세히 조사해 보면 그에 합당한 과거 행적이 튀어 나온다. 특히 지금 이 환자처럼 특이한 단어로 사건의 단서를 흘린 경우라면 더 날카롭게 챙겨 들었어야 한다.     


3.

‘봉.잡.고...’ 난데없이 가정 집에 웬 봉? 할머니가 무슨 폴 댄스라도 추시는가. “왜 봉을 잡고 일어서시나요?” 예리하게 질문을 던진다. ‘어딘가 붙잡고 일어선다는 말씀이었겠지. 대단한 내용은 아닐 거야.’ 분명 봉이라는 글자를 들었지만 합리화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공기 속으로 증발해 사라진다.     


“저희 엄마가 파킨슨병이 있으시거든요.” 파킨슨병이 나왔다, 대박사건이다. 안 그래도 걷는 폼이 어정쩡하시길래 허리나 다른 곳이 안 좋으신가 싶었는데 모두 다 설명이 된다. 파킨슨병 자체가 근육 관절 겉의 병은 아니지만 온몸 동작이 느려지면서 얼마든지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4.

“파킨슨병 관리는 잘하고 계세요?”

“아뇨.” 

역시 예상대로다. 따님 역시 파킨슨병을 잘 모르신다. 대학병원 안 가신 지도 3년이 넘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하니 주먹구구식으로 침대 옆에 봉만 설치해 드리고 그저 퇴행성으로 못 움직이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중이다.     


“지금 환자분은 어깨가 문제가 아니구요...”

A4 용지 한 장을 꺼낸다. 슥슥슥 마인드맵 그림을 그려가며 할머니 몸 상태에 대해 처음부터 주욱 설명을 드렸다. “네? 이렇게 심각한 병이었다고요? 이런 설명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내일 당장 원래 그 대학병원으로 다시 가시라고 안내드린다.      


5.

본 사건은 ‘봉 잡고’ 3글자를 놓치지 않은 덕분에 진범을 잡은 케이스다. 일부러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바쁘고 귀찮으니 자체 검열을 거쳐 대충 소통하려고 드니 문제가 생긴다. 듣는 입장에서 더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먹듯 새겨들어야 중요한 단서들을 놓치지 않는다. 수사반장 권반장 오늘도 한건 올렸다.     


*3줄 요약

○문맥에 안 맞는 독특한 단어를 들으면 일단 멈추고 질문부터 하자.

○대화중 상대가 흘리는 일상의 단어 중에 중요한 단서가 숨어있을 때가 많다.

○경청이란 한 글자 한 글자 외울 듯이 집중해서 듣는 자세를 말한다.




작가의 이전글 @1090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런 질책은 너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