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32 <판단할 때 감정을 없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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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할 때 감정을 없애야 할까>


1.

“지금 너무 흥분했으니까 일단 좀 진정해.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대체로 급박하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놀라거나, 새로운 변수의 출현으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심장이 쿵쾅거리다 보면 황당한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2.

우리 몸은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다. 원시시대부터 생존목적에 알맞게 진화한 덕분이다. 눈앞에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거리면, 우리 몸속의 스트레스호르몬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소화나 방광 같은 부분은 셧다운시키고, 모든 에너지를 근육으로 모은다. 강한 힘으로 맞서 싸우거나 재빨리 뛰어야 살아남는다.


이런 비상시국에 우리 뇌가 한가롭게 경우의 수 따져가며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눈앞의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다른 길에는 온통 지뢰밭이 깔려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 장소부터 피하기로 한다.


3.

신입사원 면접순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언제가 유리할까. 무조건 뒤로 가면 좋을까. 재미있는 데이터가 있다. 식사시간 직전과 직후의 면접시험 합격자를 비교하니, 면접관들이 공복 상태일 때 탈락비율이 훨씬 높았다. 배고픈 상황은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스트레스이므로,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연스럽게 공격적인 질문이 많아지고, 지원자의 흠집을 금방 잡아낸다.


이 원리를 잘 써먹으면 좋다. 사직서를 들고 온 김대리를 붙잡고 싶을 때, 점심시간 직전에 말하면 안 된다. 점심을 먹으며 대화하거나 식사 후에 이야기해야 훨씬 부드럽다.


4.

그럼 로보캅 같은 최팀장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내릴까. 냉정하게 여러 데이터를 비교분석하는 쪽으로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어느 쪽이 좋은지 판단할 때는 주저한다. 감정을 뺀 상태로 논리적인 생각을 했지만, 정작 선택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선택에는 가치판단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내 사고의 결과가 정말 올바르고 더 나은지, 결국 감정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게다가 감정이 메마르면 상대에게 공감도 못한다. 일 자체나 상대에 대해서도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공감불능 사이코패스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5.

좋은 선택을 하려면 감정에 휩쓸려도 안 되고, 감정을 삭제해도 안 된다. 순간적으로 불타오르는 감정은 확실히 억눌러야 한다. ‘감정적인’ 상태가 되지 않도록 진정할 필요가 있다. 한눈에 뿅 가거나 뚜껑열릴만큼 화가 난 상태라면, 정말 이대로 괜찮은지 차분히 돌아보아야 한다.


대신 내가 느끼는 본연의 감정에는 충실해야 한다. 순간의 감정에 이랬다저랬다 하면 기분파라고 봐야겠지만, 딱 설명하기 어려운 그 미묘한 마음의 쏠림은 존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어온 무수한 생존경험의 데이터는 ‘좋음’, ‘무서움’, ‘혐오스러움’ 같은 감정라벨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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