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5
<나는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일까 : 운이라는 이름의 사후 해석>
1.
“내일 경기에 저한테 운이 따라 줄까요, 안 따라 줄까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일에 운이 개입한다는 사실은 동의하면서 왜 이런 말은 어색하게 들릴까.
바로 ‘운’이라는 요소가 철저히 과거지향적이기 때문이다.
2.
운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과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개념이다. 눈앞의 결과가 당초 예상과 다르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운’을 소환한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운이 좋았다고 하고, 기대에 못 미쳤으면 운이 나빴다고 한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차이에 쉽게 붙이는 태그가 바로 ‘운’이다.
결국 운은 사후 판단의 산물이다. 결과라는 종착점에서 출발점을 되돌아보며 운이라는 단어로 자기 합리화를 시작한다. 한마디로 운의 정체는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즉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의 총합이다.
그 자리에 ‘운’이라는 조커를 끼워 넣어 퍼즐을 완성한다. 이제야 비로소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완성되었다고 느낀다.
3.
운을 판단할 때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똑같은 80점을 받아도 100점을 기대할 때와 60점을 기대할 때 운의 성격은 정반대로 바뀐다.
이렇듯 운의 색깔은 기대치와 현실의 차이로 확정된다. 같은 결과가 나와도 다른 사람, 다른 시간에서는 완전히 엉뚱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운에 대해 헷갈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절대 통제가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내 의지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면 운이 아닌 ‘나의 선택’이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귀찮아서, 조금 게을러서 나의 통제권을 놓아버리고는 전부 운 탓으로 돌리면 너무 무책임하다.
4.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상당히 크다는 의미다.
착하게 또는 악하게 살아도 동화책과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하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정당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꽤 높다. ‘운’이라는 불확실성을 동원하지 않으면 모두 화병이 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운의 시각을 통해 세상의 불합리한 부분을 혼자 납득하고 합의해 버린다. 구태여 복잡하게 머리 쓰고 고민할 필요 없이 ‘운이 나빴구나.’ 하면 금방 마음이 편해진다.
그 복잡하게 보였던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운은 사람이 불확실성과 화해하려고 만들어낸 최고의 지적 상품이다.
5.
“그럼 운을 그냥 무시해야 할까요?”
운을 인정하되 통제할 수 있는 당신의 노력과 열정에 최선을 다하라. 인간사회의 운은 주로 사람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누군가를 거쳐 찾아올 때가 많다. 스쳐 지나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야 말로 좋은 운을 만들어가는 멋쟁이다.
*3줄 요약
◯운은 예상과 다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소환하는 사후해석의 개념이다.
◯같은 결과라도 기대치에 따라 좋은 운과 나쁜 운으로 다르게 해석된다.
◯통제 가능한 영역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좋은 운을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