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840 <느낌과 생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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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과 생각의 차이>


1.

“벌써 세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대답이 없네.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거야?”

흔히 말하고 흔히 듣는 말이지만 분명히 틀린 문장이다. 다른 문장이 아니라 틀린 문장이다. 어디가 틀렸을까.

2.

세 번 말하는 동안 상대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내가 왜 대답해 줘야 해? 난 아무 말도 안할 거야. 어디 골탕 좀 먹어보시지.’ 그런 마음이었으면 날 무시한 태도가 맞다.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려는 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정확히 일치한다.


실제로는 어떨까. ‘무시’가 자주 쓰이는 문장패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야.”,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무시는 상대가 하는 행동인데, 흔히 쓰는 말에서는 내가 주어다. 한마디로 내가 수동적으로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는 말이다.


3.

느낌과 생각은 비슷한 듯 다르다. 차다 뜨겁다처럼 나의 감각으로 직접 전해지는 정보가 느낌이다. 반면 ‘무시당한다’는 말은 남의 행동을 재해석한 나만의 생각이다. 느낌은 내 주관대로 판단해도 아무 상관없지만, 타인의 언행에 대한 나만의 생각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과학적인 사실도 마찬가지다.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사진이나 여론조사 통계자료를 놓고도, 서로 다른 해석들이 나온다. 드러난 팩트는 하나인데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바뀐다. 세상은 실제 벌어진 사건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더 크게 관여하는 법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분란이 시작된다.


4.

느낌은 감정이고, 생각은 이성이다. 느낌은 손끝에 닿은 차가운 물의 온도가 정보의 전부지만, 생각은 그 느낌에 여러 가지 해석을 가미한다. ‘이 추운 겨울에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시고 얼어 죽으라는 거야!’ 누구는 얼죽아로 살지만, 누구는 찬물만 마셔도 설사한다.


느낌은 순간적이고 단순하지만, 생각은 저장된 수많은 정보의 재조합이다. 지난주 김대리가 내 인사에도 시큰둥하게 지나치더니, 지금 대답까지 제대로 안하고 있다. 누가 봐도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 맞다고 결론 내린다. 실은 김대리가 아이팟 통화하며 걷느라 내 인사를 못 봤고, 오늘은 대답을 깜빡 잊은 것뿐이지만 말이다.


5.

남과 대화할 때는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는 편이 좋다. 소심하게 혼자 생각공장을 가동시키지 말고, 직접적인 느낌 위주로 툭툭 던지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내 느낌은 나만의 것이니 남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다. 입밖에 내기 어려워 할 필요가 없다.


“세 번이나 대답을 안 해주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아, 미안.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급한 일 처리하느라 깜박해 버렸네. 내가 커피 살게.”

지금까지 나를 무시한 사람은 없었다. 자격지심이 들지 않도록, 내 자존감부터 건강하게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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