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대만 커피

by 티아

서교동에서 7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심시간마다 합정과 망원 일대의 맛있는 커피는 다 마셔봤다고 생각했는데, 대만에서 만난 커피는 내가 아는 산미가 어쩌고 고소함이 어쩌고 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가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대만에서 처음 만난 신기한 커피는 ‘카페토닉’이라는 커피였다. 메뉴판에서 이 이름을 보고 카페토닉이 뭔지 짐작되진 않았지만, 10월에도 여전히 더웠던 날씨 때문에 청량한 이름에 끌려 주문했다.


카페 사장님은 “두 번 저으세요”라는 주문과 함께 커피를 내왔는데, 투명한 유리잔에는 보글보글 기포가 오르는 탄산수 위에 크레마가 가득한 에스프레소 샷이 올라가 있었다. 나는 두 번이라는 가이드를 어기고 마음대로 빨대를 휘졌다가 순간 폭발하듯 솟아오르는 거품을 보고 놀라서 커피를 훅 빨아드렸다. 그렇게 한 입 가득 마신 소감은 ‘의외로 맛있다’였다.


카페토닉은 물 대신 탄산수에 에스프레소 샷이나 콜드브루 원액을 넣어 만든 커피라고 한다. 개운하고 청량한 맛이 레몬에이드처럼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리고, 끝 맛도 아주 깔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는 곳이 드문데 대만에서는 꽤 많은 카페에서 카페토닉을 취급하고 있다. 더운 날씨와 함께 다양한 음료에 대한 개방성 때문일 것이다.



대만에서 두 번째로 만난 신기한 커피는 ‘패션후르츠 아메리카노’였다. 이름만 봤을 때는 원두에 과일 향을 입힌 가향 커피인 줄 알았으나, 받아보니 패션후르츠 주스와 아메리카노를 같이 마시는 커피였다. 음료는 두 개의 층으로 분리되어 아래쪽엔 주황색 패션후르츠 주스가, 위쪽엔 아메리카노가 1:4 정도의 비율로 담겨 있었다.


무슨 맛인지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나름대로 꽤 정직한 맛이었다. 그러니까 입 안에 패션후르츠 주스를 한 모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넣고 함께 마신 것과 똑같은 맛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나 신기하게도 어울렸다. 이 카페에는 포도 아메리카노와 크랜베리 아메리카노도 있었다. 아메리카노가 이처럼 다양한 과일과 어울린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패션후르츠 아메리카노는 대만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아주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커피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패션후르츠 아메리카노에도 물 대신 탄산수를 넣을 수 있는데 상상해보니 그쪽이 좀 더 맛있을 것 같다.


세 번째로 만난 신기한 커피는 소다 아이스크림 커피였다. 타이중에서 자주 가던 Coffee Stopover Black이라는 카페의 메뉴판 끝에서 ‘니비수다(溺斃蘇打, 물에 빠져 죽은 소다)’라는 기괴한 이름을 발견하고 주문한 것이었다.


니비수다는 카페토닉이 담긴 투명한 잔에 소다맛 막대 아이스크림이 거꾸로 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소다가 커피에 빠져 죽은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두고 '익사' 같은 이름을 붙이다니, 이걸 개발한 바리스타에게 어두운 개그감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잡고 한 바퀴 휙 저으니 탄산이 훅 올라왔다. 탄산수와 커피와 소다 아이스크림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구나. 놀라울 정도로 조화로운 맛이었다. 커피가 묻은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는 것도, 아이스크림이 녹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거웠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만 커피 중엔 소금커피라는 게 있다. 85도씨라는 대만의 카페 겸 베이커리에서 유명해져서 우리나라 편의점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대만에서는 커피 위에 짭짤한 무스가 도톰하게 올라가서 잔을 기울이면 커피와 함께 무스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데, 편의점 판매를 위해 팩에 담기면서 무스는 빠지고 커피 자체에 짠 맛이 들어가게 되었다.〈마이 미씽 발렌타인〉이라는 대만 영화를 보고 사은품으로 받아 마셔봤는데 그것도 그것대로 맛있었다.


보기엔 이상했던 커피가 마셔보면 맛있었던 이런 경험들은 전부 바리스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의심의 한 모금이 확신의 한 모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바리스타의 노력을 느꼈다. 주스가 조금 덜 들어갔더라면, 소다 아이스크림이 조금 더 달았더라면 아차 하는 순간에 균형이 무너졌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바리스타는 최적의 조화를 찾기 위해 비율, 온도, 원두 종류, 재료 등을 신중하게 정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집에서 따라 해도 절대 같은 맛이 나오지 않을 거다. 약은 약사에게, 커피는 바리스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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