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대만 친구와 광화문에서 우육면을 먹었다. 그 친구는 아직 한국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지금 한국 친구 언니밖에 없어요.” 그 말을 강조하듯 손끝으로 내 팔뚝을 툭툭 쳤다.
나도 대만에서 그랬다. 마음 맞는 대만 친구가 한 명쯤 있었으면 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몰랐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 중국어도 서툴렀던 때라 좀처럼 자연스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네이버에 ‘외국에서 친구 사귀는 법’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많은 글에서 언어교환 어플리케이션인 헬로우톡을 추천하고 있었다. 언어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으니 정말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헬로우톡을 깔고 신기하게도 오래지 않아 ‘미도리’라는 대만 사람과 언어교환 약속을 잡게 되었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 10시, 타이중 교육대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내가 미도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셨다. ‘저 할머니가 미도리인가?’ 그러고 보니 미도리에 대해서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정보 외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는 뜻밖에 학생증을 내밀며 내 것인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머니는 미도리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떠나고 잠시 뒤 진짜 미도리가 녹색 자전거를 타고 도착했다. 미도리는 나보다 서너 살 어린 여자였고, 나보다 키는 더 컸으며 도톰한 뱅 앞머리 아래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미도리는 대학 때 일본어를 전공했고 초록색을 좋아해서 닉네임을 ‘미도리’라고 지었다고 했다. 미도리는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해서 일본어, 한국어뿐만 아니라 스웨덴어(어쩌면 핀란드어)와 무슨 아프리카어도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오전 두 시간씩 미도리 집에서 언어교환을 하기로 했다. 나는 어학당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을 묻거나 대화문을 읽으면서 발음 교정을 받았고, 미도리는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을 준비하며 주로 작문 문제를 물었다.
회화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미도리는 구분하고 정리하는 공부법을 좋아했다. 한 번은 강조의 의미를 나타내는 한국어 부사를 한 아름 들고 와서 그 차이를 묻기도 했는데, 노트에는 ‘완전, 매우, 대단히, 정말, 몹시, 엄청, 너무, 진짜’ 등이 적혀 있었다. 새삼 한국어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첫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춘수당 본점에 갔다. 나에게 춘수당 본점은 1983년 쩐주나이차가 시작된 전설의 식당이자 유명 관광지였는데, 미도리에게 이곳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가던 동네 식당이었다. 우리는 미도리의 추천으로 꽁푸미엔(功夫麵, 짜장면과 비슷한 건면)과 찐샤위니완(金沙芋泥丸, 타로 앙금과 커스터드가 들어가는 튀김볼) 등을 주문해서 먹었다.
언어교환이 끝나면 우리는 이렇게 종종 맛있는 식당이나 타이중 명소를 찾아다녔다. 사실상 미도리가 나를 안내해주는 식이었다. 미도리 덕에 르어청 사원(樂成宮)에도, 심계신촌(카페 소품샵 거리)에도, 등불 축제가 열리던 원심 공원에 가볼 수 있었다.
타이중에서 나고 자란 미도리는 아는 게 많았다. 미도리는 르어청 사원(樂成宮)에서 소원을 빌면 늦더라도 반드시 이뤄진다고 했고, 또 심계신촌에서는 홍또우빙(紅豆餅)보다 지단까오(雞蛋糕)를 먹는 게 낫다고 했다. 똑같이 팥소가 든 간식이지만 베어 먹어야 하는 홍또우빙보다 한 입 크기의 지단까오가 걸으면서 먹기에 더 편해서였다. 실제로 길에서 홍또우빙을 먹다가 팥소를 흘려서 옷을 버린 적 있던 나는 그 말에 신선한 깨달음을 얻었다.
몇 개월 뒤 코로나가 터지고 서로 바빠지기도 하면서 우리의 언어교환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렇다 해도 미도리와 보낸 시간은 대만에서 살아가는 데 적지 않은 힘이 되어주었는데, 현지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대만 친구 만들기는 ‘월플라워(wallflower)’가 되기 싫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영어 단어인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춤출 사람이 없어서 벽지에 그려진 꽃처럼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사람을 ‘병풍’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한 가닥 실만큼이라도 좋으니 타인과 연결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령처럼 벽지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아무와도 얽히기 싫다는 스즈코의 마음으로 대만에 왔는데, 어느새 또 사람을 찾고 있는 나였다. 미도리를 포함해 대만에서 사귄 대만 친구들, 한국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