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었다. 핸드폰에 구글 지도를 켜고 타이중 서쪽 바다를 두 손가락으로 늘렸다 줄였다 하다가 타이중 위의 도시, 먀오리의 바이샤툰에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로 한 번 갈아 탄 뒤 낡고 인적 없는 바이샤툰역에 도착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는 무임승차를 해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오는데 정면으로 ‘해변(海邊)’이라고 적힌 초록색 표지판이 보였다. 한 방향만을 단순하게 가리키는 그 표지판이 마음에 들었다.
역에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바이샤툰으로 가는 길에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을 보았다.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바다를 수호하는 마조 여신을 모시는 곳이었다.
발소리를 조심하는 사람들,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를 밀어내는 대형 팬, 불이 붙은 향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연기, 태워지길 기다리는 종이돈 뭉치, 무서운 표정을 한 조각상들……. 천천히 사찰을 둘러보는 사이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에게 바다는 바람 한번 쐬러 가는 곳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바다는 가까운 사람을 보내고 그 앞으로 펼쳐지던 풍경인지도 몰랐다.
도착한 바이샤툰에는 바다낚시를 하는 두 사람 뒤로 무한한 양의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수면이 이리 가까이 와보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나는 나를 대만으로 오게 한 것이 바다와 같은 낭만임을 알고 있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과 외국에서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뿌리가 같았다.
한자를 풀면 ‘물결이 가득하다’는 의미인 ‘낭만(浪漫)’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상태를 내포하고 있다. 감정의 홍수와 같은 낭만은 역설적이게도 가을 낙엽처럼 바싹 마른 결핍에서 생겨난다.
늦은 나이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면서 대단하다, 용감하다 하는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대단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말라서 떠난 것이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 살 자신이 없어서, 그게 익숙해지면 나 없는 인생을 살게 될까 봐 떠난 것이었다. 대만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게 다 낭만이었고 잃어버린 것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껏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