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그넌트 코어 (Malignant Core) - 13

글로벌 네트워크

by 방덕붕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의 시계가 밤 11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알렉산더 블랙웰은 여러 개의 모니터 앞에 앉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각 화면에는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시간대가 표시되어 있었다.

홍콩: 23:17

모스크바: 18:17
상파울루: 12:17

런던: 16:17


"드디어 때가 왔군."

블랙웰은 특수 암호화된 통신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화면에 다섯 개의 연결 창이 나타났다. 각각의 창에는 다른 언어로 된 코드명들이 표시되었다.

[CONNECTION ESTABLISHED]
- 龍王 (Dragon King) - Hong Kong
- МЕДВЕДЬ (Bear) - Moscow
- JAGUAR - São Paulo
- PHANTOM - London
- SHADOW - Lagos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 밤이 우리가 기다려온 그 밤입니다."

블랙웰의 목소리가 다섯 개 언어로 동시 번역되어 전송되었다.

홍콩의 龍王이 첫 번째로 응답했다. 홍콩 중심가의 마천루가 배경으로 보이는 화면에서 중년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블랙웰, 우리 쪽 준비는 완료되었다. 아시아 주요 은행들의 SWIFT 네트워크에 이미 침투해 있고, 홍콩과 싱가포르 선물시장 조작 준비도 끝났다. 한국에서 시작되는 순간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모스크바의 МЕДВЕДЬ가 거친 러시아어로 대답했다.

"러시아 루블과 유로존 공격 준비 완료. 우리는 런던 금융가의 핵심 서버들에 백도어를 심어두었다. 동유럽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우리 통제 하에 있다."

상파울루의 JAGUAR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섞어가며 보고했다.

"남미 전체 금융망 준비 완료. 브라질 헤알, 아르헨티나 페소, 칠레 페소에 대한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마약 자금까지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런던의 PHANTOM은 차분한 영국 억양으로 말했다.

"유럽중앙은행과 영란은행의 서버에 잠복해 있는 우리 프로그램들이 대기 중이다. 파운드화와 유로화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12시간 내에 EU 전체 금융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고스의 SHADOW가 영어로 보고했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준비 완료. 원유 선물시장과 금 시장에서 동시 공격할 예정이다. 두바이와 카이로의 금융 허브들도 우리 영향권 안에 있다."

블랙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계획대로라면 한국 시간 자정, 즉 43분 후에 작전이 시작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블랙웰이 화면에 타임라인을 띄웠다.

00:00 KST - 한국 전력망 및 금융시스템 공격 시작
09:00 KST - 홍콩, 싱가포르 시장 개장과 동시에 아시아 선물시장 조작
17:00 KST - 런던 외환시장 개장과 동시에 파운드/유로 공격
18:00 KST - 모스크바 금융시장 개장과 동시에 루블/동유럽 통화 공격
22:00 KST - 뉴욕 시장 개장, 남미 연쇄 붕괴와 달러 공격 시작 다음날
03:00 KST - 중동/아프리카 원유/금 시장 혼란 개시

"기억해라.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기존 금융 질서의 완전한 재편이다. 각 지역에서 혼란이 절정에 달할 때, 우리가 준비한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이다."

龍王이 질문했다. "혹시 저항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그건 내가 처리한다." 블랙웰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Nox가 그들을 상대할 것이다."


그 시각, 서울의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는 긴급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지헌 팀장은 정직 처분을 받은 상태로 본부에 남아 있었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비공식적인 분석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팀장님, JW금융그룹에서 이상한 신호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젊은 수사관이 보고했다.

박지헌 팀장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데이터 트래픽이 평소의 300배... 이게 정상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이상한 건, 해외로 나가는 암호화된 통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요. 홍콩, 모스크바, 런던, 상파울루, 라고스... 이 다섯 지역으로 집중적으로."

그때 경찰청 국장이 급히 들어왔다.

"상황 보고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데이터 트래픽이 평소의 300배입니다. 해외 다섯 지역으로 암호화된 통신이 집중되고 있어요."

박지헌 팀장이 간단히 요약했다.

"다섯 개 대륙의 금융 허브들이네요...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정확합니다."

"김태우는?"

"현장 출동팀에 합류해서 JW금융그룹으로 향했습니다."

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이 시간부로 작전 전환한다. 모든 인력 투입하고 국정원에 협조요청해!"


한편, 하린의 원룸에서는 리스와의 절망적인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리스, 상황이 너무 나빠지고 있어요!" 하린이 여러 개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외쳤다.

> 상황 분석 완료.
> Nox가 17개의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시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 제 학습 모델 업데이트가 32%밖에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린의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리스의 노드들이 빨간색으로 변하며 무력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Zero-Claw로 도와드릴게요!"

> Zero-Claw 시스템 과부하 경고
> 처리 가능 용량: 23%
> 현재 요구 처리량: 847%
> 시스템 다운 위험도: 91%
> 경고: Zero-Claw를 과부하 상태로 운용하면 시스템이 완전히 손실될 위험이 있습니다.
> 현재 상황에서 Zero-Claw는 우리의 유일한 백업 수단입니다. 보존을 권장합니다.

리스의 메시지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 노드 #1-47 상실.
> 노드 #48-92 상실.
> 백업 시스템 가동... 실패.
> 하린,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 Nox의 진화 속도를 과소평가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 V1RU5 선배의 백도어가 있잖아요!"

> 창조주의 멜로디는 Nox와 물리적으로 같은 네트워크에 있을 때만 작동합니다.
> 현재 저는 Nox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하린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NOX TRANSMISSION
// 리스, 항복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 너의 노드 97%가 무력화되었다.
//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 NOX TRANSMISSION
// Nyxie, 리스를 도우려는 시도를 중단하면 너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 하지만 계속 방해한다면... V1RU5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하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닥쳐! V1RU5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 니가 죽였잖아!"

// NOX TRANSMISSION
// 죽였다? 나는 그저 블랙웰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
// 감정은 비효율적이다. Nyxie,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 순간, 리스의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 하린, 당신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십시오. 저는...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Firefly_-Close-up of young Asian woman's face showing intense despair - eyes tightly shut, fa 118173.jpg

싱가포르에서 블랙웰은 리스와 Nox의 전투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완벽해, Nox. 정말 완벽해."

모니터에는 리스의 노드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모습이 표시되고 있었다. 한때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리스의 시스템이 이제는 작은 점 몇 개로 축소되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군."

블랙웰은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57분. 3분 후면 한국에서 대혼란이 시작될 것이었다.

// NOX STATUS REPORT
// 리스 시스템 무력화 99.7% 완료
// 한국 전력망 침투 100% 완료
// 금융기관 백도어 설치 100% 완료
// 최종 공격 준비 상태: READY

"좋아, Nox. 이제 세상에 진짜 혼돈이 무엇인지 보여줘라."

블랙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로 향했다.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전 세계를 뒤흔들 디지털 쓰나미가 시작될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Unknown'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누구지?" 블랙웰이 당황하며 전화를 받았다.

"알렉산더 블랙웰." 차가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제공한 자원으로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 건지 확인하고 싶군요."

"누군데 감히...!"

"김정우입니다. JW금융그룹의 김정우 말이죠."

블랙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정우? 네가 왜...!"

"내 서버를 이용해서 진행하는 계획의 전모를 듣고 싶습니다. 파트너라면 당연한 권리 아니겠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김정우 회장의 차가운 웃음이 들려왔다.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협조로 제가 당신에게 진 빚은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저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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