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미수범의 꿈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하실에 묶인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끈이 너무 느슨해요."
"아, 네? 죄송해요!"
김철수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밧줄을 다시 묶었다. 그런데 또 너무 느슨했다.
"아니, 이렇게 하면 제가 금방 빠져나올 수 있어요."
"아, 맞네요. 근데 너무 세게 묶으면 피가 안 통할까봐서..."
묶인 남자 박진우가 어이없다는 듯 철수를 쳐다봤다.
"형님, 저를 죽이려는 거 맞죠?"
"네! 맞아요!"
"그런데 피 순환을 걱정해요?"
철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제가 아직 초보라서요."
진우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을 '납치'한 이 남자가 얼마나 어설픈지 말이다. 먼저 찾아온 건 철수였다. 진우가 퇴근길에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접근해서는 "저... 죄송한데요,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진우가 고개를 돌리자 철수는 떨리는 손으로 매우 날카로워 보이는 칼을 꺼내들었다.
"저... 저와 함께 가주세요."
"네?"
"아니 그러니까, 죽여야 해서요. 죄송해요."
진우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살인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다니.
"혹시... 연쇄살인범이세요?"
"아직은 미수범이에요." 철수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한 번도 성공 못 했거든요."
그래서 진우는 호기심에 따라왔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 지하실에서 철수는 진우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저,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요. 왜 저를 타겟으로 정하신 거예요?"
"아, 그게..." 철수가 핸드폰을 꺼냈다. "뉴스 보셨어요? 연쇄살인범 박진우가 또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그거요."
"네! 저도 연쇄살인범이 되고 싶은데, 아직까지 한 번도 성공을 못 했어요. 그런데도 경찰들이 절 쫓고 있어요. 억울하죠? 전 아무도 안 죽였는데!"
철수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서 진짜 연쇄살인범을 죽이면 제가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TV에도 나올 수 있고..."
진우가 철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실패했어요?"
"87번이요."
"87번?"
"첫 번째는 칼로 찌르려고 했는데 긴장해서 자기 손가락을 찔렀고, 두 번째는 독을 탔는데 잘못해서 제가 마셨고..."
철수가 하나하나 세어가며 실패담을 늘어놓았다. 진우는 점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경찰이 쫓고 있다고요?"
"네. 제가 '연쇄살인 시도범'으로 지명수배 중이에요. 시도만 했는데도!"
진우가 한숨을 쉬었다.
"철수씨, 솔직히 말하면... 저도 연쇄살인범 맞아요."
"역시!"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철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런데 뉴스에서는..."
"뉴스가 틀렸어요. 제가 타겟으로 정한 사람들이 알아서 죽더라고요."
진우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첫 번째는 친구였고 커피를 같이 마셨는데, 그 다음날 집에서 칼에 찔려 죽었고요. 두 번째는 클럽에서 만났는데 이틀 후에 모텔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됐고. 세 번째는 길에서 차를 얻어 탔는데 저수지에 빠져 죽었어요... 지금까지 17명 모두 저를 만나고 며칠 안에 알아서 죽었지만 제가 그러지 않았어요."
"그럼 형님도..."
"네, 저도 연쇄살인미수범이에요. 다만 미수 이유가 달라요."
철수가 반신반의하며 진우를 바라봤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말이에요? 그런 일이 17번씩이나?"
"믿기 어렵죠. 저도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어요."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둘 다 가짜 연쇄살인범이네요?"
"맞네요."
"그런데 형님, 저 어떻게 죽일까요? 저도 한 명은 죽여야 진짜가 되는데..."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철수씨, 포기하세요. 그냥 평범하게 사세요."
"싫어요! 저는 꼭 TV에 나갈 거예요!"
철수가 다시 매우 날카로운 칼을 들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에서 칼이 미끄러졌다. 칼은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진우의 밧줄을 정확히 잘라버렸다.
"어?"
진우가 자유로워진 손을 보며 일어섰다.
"철수씨, 이제 88번째 실패네요."
"아... 아니에요! 아직 안 끝났어요!"
철수가 다가오려고 했는데, 진우가 먼저 떨어진 칼을 주워들었다.
"철수씨, 이제 그만..."
철수가 칼을 빼앗으려고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바닥에 놓여 있던 의자 다리에 발이 걸렸다. 그대로 넘어지면서 진우가 들고 있던 칼에 가슴이 꽂혔다.
매우 날카로운 칼이었기 때문에 저항 없이 들어갔다.
"어?"
철수가 자신의 가슴에 꽂힌 칼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88번째도 실패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 이번엔 성공했네요."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아, 철수씨! 괜찮아요?"
진우가 철수를 흔들어봤지만, 철수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런... 이게 무슨..."
진우는 당황했다. 드디어 자신의 첫 번째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타겟은 자신을 죽이려던 연쇄살인미수범이었다.
며칠 후 뉴스에서는 이렇게 보도했다.
"연쇄살인범 박진우가 또 다른 연쇄살인범 김철수를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철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살인에 성공하지 못한 미수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TV 화면에는 철수의 사진이 크게 나왔다.
진우는 TV를 끄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TV에 나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