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또 그 지점에 와있었다
생각이 느려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대로 아래로
끌려가는 느낌.
익숙했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나는 또다시
내려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완전히.
죽음으로.
나는 며칠간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고립되고 있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
그때 문득 가끔씩 안부전화가 오고,
며칠에 한 번씩 내 생사여부를 확인하러 오던
담당 선생님이 떠올랐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 낯선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내가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내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로 끝까지 내려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사이에 멈춰서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핸드폰화면을 켰다.
통화목록을 내렸다.
익숙한 번호.
몇 번이나 받지 못했고, 몇 번이나 피했던 번호.
나는 그걸 한참 보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가 먼저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그 몇 초가 길게 느껴졌다.
"저... ooo인데요, 제 담당자 선생님 계신가요?"
"담당자 선생님 성함 알고 계세요?"
"아니요"
"잠시만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바로 연결해 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oo 씨"
수화기 너머에서 나지막하고
사람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말했다. 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 저요.."
그다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고, 목이 막힌 것처럼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재촉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천천히 말하셔도 돼요."
누군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는 게 정말 큰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냈다.
".. 좀 이상해요, 저."
설명도 없고, 정리도 안된 말.
그런데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주 조금 느꼈다.
그리고 담당선생님이 천천히 물었다.
"지금 혼자 계세요?"
"네."
"식사는 하셨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지금 상태가 조금 걱정되는데, 오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부담이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큰 일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거부하려고 했다.
괜찮다고, 혼자 있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게 말했다.
"... 네."
그 한마디를 하고 나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약속을 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다시 가만히 앉아있었다.
심하게 불안했다.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얼마뒤, 똑똑똑 -
나는 한참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노크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그제야 나는 겨우 일어나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열었다
문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은 공기가 굉장히 무거웠고,
정리되지 않은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그저 조용히 앉아계셨다
"물 조금 드셔보실래요?"
아주 단순한 말인데 나는 그걸 며칠 동안
못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컵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벌컥벌컥 물을 한 모금 다 마셨다.
선생님은 내 옆에 그대로 앉아계셨고,
아무것도 강요하지도,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서만 버티는 상태에서 조금 벗어났다.
며칠 뒤 담당 선생님이 말했다.
"주민센터 연결해 볼게요."
나는 잠깐 망설였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갔다.
"지금 혼자 지내시고, 식사도 거의 못하시는 상태라
긴급복지 지원이 필요하실 거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내상황은 충분히 전달된 것 같았다.
공무원은 조용히 몇 가지를 물었다
소득,
현재 생활 상태,
가족 관계
기타 등등..
나는 대부분 짧게 대답했다
"없어요"
"혼자요"
"잘 모르겠어요"
그 말들이 내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서류 몇 장이 내 앞에 놓였다.
긴급복지지원 신청서
상담연계동의서
그리고
기초생활수급 가능 여부 확인서.
"지금 상태라면 기초수급자 신청도 같이 진행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깐 멈칫했다
기초수급자.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봤던 단어
하지만 나와는 조금 먼 단어라고 생각했던 단어.
그게 내 앞에 놓여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종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내 이름을 썼다.
내 이름 석자.
몇 번이나 써왔던 이름인데 그 서류에서 쓰는 내 이름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도움을 받는 쪽에 내 이름을 올렸다.
며칠 뒤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주민센터를 찾았다.
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의료급여 1종으로도 같이 진행될 거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그게 뭐예요?"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이상하게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이후로 조금씩 달라졌다.
필요할 때 병원을 부담 없이 갈 수도 있었고,
약을 받는 일도 덜 부담스러워졌다.
긴급복지로 생계지원이 들어왔고,
전기세, 가스비, 핸드폰요금지원등이 이어졌고
식사 바우처와 도시락 지원이 이어졌다
필요한 날에는 문 앞에 음식이 놓여있었다
음식물쓰레기봉투도 함께.
나는 문을 열고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집어 들었다. 그날은 그걸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넘겼다.
자살예방센터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다.
짧은 안부,
짧은 질문.
"오늘은 어떠세요?"
나는 대부분 짧게 대답했다.
"... 그냥 그래요."
그 말이면 충분했다.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래도 연결은 유지되었다.
어떤 날은 반찬가게에 직접 가서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공짜로 사 먹을 수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이렇게 제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겨우 이어지기도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잘 살아야 한다는 쪽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