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는 안 보이니? 그만 울어. 새로운 선생님 민망하잖니.
분명히 화요일 3시에 합격서류 갖고 오래서 부랴부랴 갔더니 교감선생님 조퇴하시고 안 계심. 다음날 서류 갖고 갔더니 인수인계받으러 금요일에 또 오래고;;; 출근 일주일 전부터 계속 출근 한 기분 뭐지? 하루에 다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번 오가게 하니 진 빠지고 배려받지 못하는 기분이라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합격했잖아. 기존 선생님께 인수인계받으려고 방문한 금요일 오후.
4층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교실 저 멀리서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지? 누가 다쳤나?
아닌데... 오열하네 누가 죽었나?
내가 맡게 될 반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곡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여기가 교실 복도인지 장례식장인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오열소리다. 설마? 그렇다. 설마는 없다. 인간의 촉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벌어질 일들을 알아챈다. 우리 반이구나.
세상해나 마상해나 여자애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담임선생님 떠난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곡소리하며 울고 있다. 아... 진땀 나네... 교직 생활 동안 헤어질 때 저 정도로 우는 애들 처음 본다. 기존 담임선생님이랑 정말 좋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출산이 임박한 기존 담임선생님은 젊고 생글생글하다. 품이 큰 옷 밑으로 불룩 나온 배만 아니었다면 아가씨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아이들이 정든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많이 아쉬웠나 보군. 진정하고 이제 집에 보내려는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주 나라 잃은 백성처럼 슬퍼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새로운 담임인 나는 왠지 나라님을 몰아내고 대신 통치하러 온 식민지 본토의 사령관같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불청객의 느낌이 강하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렇게 우는 것 처음 봤어요. 너무 아쉽나 봐요."
"제가 그만두는 걸 지금 알아서 그래요. 미리 말하면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직전에 말했거든요."
"아...아이를 낳을때 되면 낳아야죠. 참을수도 없는데 민원이라니. 그래도 선생님이 싫으면 저렇게 울겠어요? 저 너무 부담되네요. 애들이 미워할까 봐 엉엉."
"아휴. 평소에 저러지도 않아요. 한 명이 우니까 동요돼서 더더 그런 거 같아요."
"군중심리... 아이들이 감정이 풍부한가 봐요. 그나저나 저기 저 계속 대성통곡하는 저 아이 이름 좀."
"하하하 선생님 아인이에요."
"아인이... 메모메모 이렇게 크게 울었단 말이지. ㅋㅋㅋ"
농담이 오고 가며 반아이들과 학급 운영 업무 인수인계를 모두 받고 집으로 향했다.
근무 일주일 전부터 계속 불러대는 학교나 가자마자 대성통곡하는 반아이들까지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온다.
교실 환경이나 말씀을 들어보니 그간 매우 민주적으로 운영하셔서 아이들이 왜 이리 샘한테 목을 매는지 공감이 되었다. 나보고 학년말이라 흐트러지고 있어 좀 긴장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씀까지 얹어주셨다. 나의 젊은 시절을 보는듯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항상 왁자지껄하고 생동감 넘치는 발표력 왕성한 과거의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 회상된다. 창의력 팡팡 너무 재미나지만 차분함이 부족한...
시간이 지나 내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엄마 선생님이 된 나는 과거의 나와 달라졌다. 친구같은 선생님보다는 다른것을 선택하고 싶다. 아이들과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 학기말에 불현듯 기존 선생님을 밀어낸 듯한 나의 위치에서 내가 설 길을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우냐? 선생님 좀 서운하다. 나도 환영해 주면 안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