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연 Sep 05. 2022

옵션쇼크!키클롭스 꼬리를 밟은 사람들(3)-연재소설

1.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03

(포식자 3)

K 선배는 졸업하자마자 이름이 알려진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역시 일류대학 출신에 실력도 출중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만해는 펀드 매니저를 꿈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회의 중요하면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보직은 자기 뒤를 봐줄 일류대 학연이 선발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처음에는 고만해도 오기와 용기를 버무려 펀드 매니저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역시나 고배를 거푸 마시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포기할 이정표가 만들어질 만큼 도전하다가 결국 펀드 매니저의 꿈을 접고, 중소형 증권사의 리서치 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증권회사의 리서치부서는 주로 기관투자자, 특히 펀드 매니저에게 투자 판단의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장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다. 증권회사의 리서치부서는 증권 산업의 먹이사슬에서 펀드 매니저에게 ‘을’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펀드 매니저가 펀드의 성과를 올리는 성패가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투자 정보의 질에 달려있기도 하므로 펀드 매니저는 리서치 부서와 서로의 급소를 알고 있는 각별한 공생 관계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고만해는 K 선배로부터 이러한 증권 산업 환경에 대해 이미 정보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상 만나는 펀드 매니저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도록 최선을 다했고, K 선배도 그의 주변 펀드 매니저들에게 고만해에 대한 소개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중소형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업무를 익히 시작한 지 약 1년 반이 지났을 즈음 K 선배가 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K 선배의 자산운용회사에서 펀드 매니저를  지원하는 리서치 인력 자리가 비었으니 지원해보라는 것이었다. 잘만 풀리면 멀기만 해 보이던 펀드 매니저가 될 기회를 고만해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름으로 열심히 물불 안 가리고 펀드 매니저들에게 서비스한 것이 그에 대한 좋은 인물평으로 이어졌고, K 선배의 적극적 추천도 한몫하면서 고만해는 K 선배의 자산운용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처음 인정받고 자산운용회사로 옮기면서 고만해는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자신감은 현실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회사를 옮긴 지 6개월이 지난 후 드디어 그는 인덱스 펀드의 매니저로 데뷔하게 되었다.



 인덱스란 코스피 지수나 코스피200 주가지수 또는 대형주 지수 등 같은 다수 주식 묶음의 가격을 단순 평균하거나 가중 평균한 지수를 얘기하며, 주식을 묶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인덱스 지수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인덱스 펀드는 특정한 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투자하도록 펀드 약관에 정해 놓은 펀드를 말한다. 이것은 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만 하므로 수동적(패시브, passive) 투자전략 펀드라고 하고, 펀드 매니저가 적극적인 투자전략을 시행해서 시장지수의 움직임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active) 펀드에 대칭되는 개념의 펀드이다. 액티브 투자전략이 우세한지, 인덱스 투자전략이 우세한지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펀드 매니저에게는 액티브 펀드보다는 재량권이 없으므로 자기 역량을 보일 기회는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지수의 움직임과 차이 없이 펀드의 총가치가 움직이도록 운용하는 인덱스 펀드도 쉬워 보이지만 상당한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시장지수를 구성하는 종목 전체를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적은 금액으로 인덱스 지수 움직임을 복제해야 하므로 가격 움직임의 추적오차(트렉킹 에러)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와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관한 판단에 치중하는 액티브 펀드보다 인덱스 펀드 운용은 기술적 조정 능력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고민)일러스트-조수연

고만해는 이후 2년 반을 작은 인덱스 펀드를 운용하면서 좀 더 대형 액티브 펀드를 맡을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고만해가 좋은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역시 학연은 곳곳에서 때를 안 가리고 고만해의 발목을 거는 높은 문턱 역할을 했다. 회사 내부적으로 인사, 연수 등 좋은 기회의 배분에 학연이 유리하게 작용했고, 펀드 투자 업무에서도 좋은 투자 정보의 유통은 역시 증권업계의 학연 네트워크가 보이지 않지만 유리하게 작동했다. 회사 안팎의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어서는 펀드 매니저로서 성공을 기약하기가 어렵다는 한계 의식이 다가오자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그야말로 평생 들러리 서는 샐러리맨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감이었다. 펀드 매니저라는 명함은 멋있었지만, 대형펀드를 맡아 큰 성과와 평판을 얻지 못하면 어차피 샐러리맨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만해는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딱 거기까지만 도와준 K 선배의 무관심도 야속했다. K 선배는 증권업계에서 잘나가는 유명 인사로 알려지면서 고만해는 잊은 듯했다. 고만해도 입문까지 도움을 받았으면 더는 도움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느 사회이든 계층의 상단에 서려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부담스러운 짐으로 남는다. 여기서 고만해는 여기서 장애를 극복하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찾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제 고만해의 나이도 서른두 살이니 진로를 변경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면 더 늦출 수 없는 시점이라는 생각에 그는 하루하루가 초조했다.


2007년 3월 초. 이른 봄 하늘에 마감 시간 다 된 뷔페에서나 볼 수 있는, 식어 빠진 치즈 조각 같은 구름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그런데 하늘색은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워 뒤죽박죽인 고만해의 심리를 인상파 그림으로 옮긴 느낌이다. 그가 못마땅해하는 구름을 향해 프로이센 증권의 남상문 과장이 힘껏 친 골프공이 쫓아가고 있다. 남 과장이 공이 떨어진 곳을 확인하고는 고만해에게 시선을 돌리며 영업 브로커 특유의 과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고 팀장님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고만해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문으로 답한다.

“왜?”

남 과장의 질문에 궁금하다는 듯 라운딩에 동반한 프로이센 증권 전 부장도 시선을 주며 여차하면 참견할 태세를 갖춘다. 남 과장이 계속 묻는다.

“최근에 사무실에 가서 봐도 좀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요.”

밝은 계란색 복장의 캐디가 다음 고만해가 첫 티샷 할 차례라고 재촉한다. 고만해는 드라이버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것처럼 빛바랜 가을 잔디를 헤집으며 티 꼽을 자리를 찾는다. 고만해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여지자 전 부장이 끼어든다.

“사람 참. 남 과장이 애인이라도 되나? 표정까지 읽게?”

 그리고는 고 만해에게 고개를 돌리며 전 부장이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담당 브로커인 남 과장이 사실 애인보다 더 가깝지 않습니까? 고 팀장이 그리 느끼지 않으면 남 과장 업무능력에 오점이 남는데요.”

전 부장은 법인영업 브로커만 15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세 군데 증권사 법인영업부를 거치며 신설 프로이센 증권에 부장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다. 새벽 한, 두 시에도 담당 거래처의 펀드 매니저에게 술 먹자는 전화가 오면 뛰어나가고, 어느 상대방에게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최고의 서비스 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영업의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다. 고만해가 전 부장의 대화에 응답한다.

“남 과장은 잘하고 있어요. 전 부장님. 다만 내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고만해가 서너 차례 준비 운동을 한 후 스윙했으나 그가 친 골프공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관목 숲 근처에 서 있는 아웃 오브 바운스 말뚝 앞에 간신히 멈췄다. 그러자 캐디가 고만해의 공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며 나이스 샷을 외친다. 그녀의 외침은 충분히 상투적이고 무의미했다. 전 부장이 다시 고 팀장에게 말한다.

“아, 그러세요. 그러면 뭐가 불편한지 조금 힌트를 주면 남 과장에게 도움이 될 텐데요”

전 부장은 이제 간절하다는 눈빛까지 보낸다. 사십 중반을 넘긴 남자가 그런 표정을 하면 누구나 무시하기 힘들다. 고만해는 그의 노력에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든다. 영업맨들, 그들은 감정을 건드리는 마술사들이다. 고만해도 작은 성의를 보이겠다는 듯 대꾸한다. 그러나 이 작은 성의 표시가 고만해의 인생 진로를 바꾸는 첫 단추가 될 줄은 그는 몰랐다.

“그냥. 요즘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 부장이 의외라는 듯 입꼬리에 힘주며 그의 말을 받는다.

“아이코. 증권업계 꽃인 펀드 매니저께서 그런 말을 하면 곡(哭)할 사람들 많을 텐데요”

고만해가 피식 웃는다.

“제가 하는 일이 좀 그래요. 인덱스 펀드라는 게 제 적성에는 안 맞는 것 같아요. 펀드 매니저라고 하지만 사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좇아가야만 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잘해도 본전인 것 같고. 아무 주관 없이 사는 것 같고.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네요”

남 과장이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 고만해가 순간 기분이 나빠진다. 그가 늘 한 수 위에 있어야 하는 대상에게 치부를 들킨 것 같고, 펀드 매니저로서 자부심이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 부장이 다음 티샷을 위해 티 박스에 섰다. 스윙 동작이 그의 연륜만큼이나 부드럽다. 곧 전 부장이 친 공은 11도 드라이버의 결에 따라 가볍게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전 부장이 꼬았던 스윙을 풀며 얘기를 이어간다.

“저 같은 영업장이는 잘은 모르지만 좀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맡으면 재미는 있겠지요? 회사에서 높은 평가받을 기회도 생기고요”

고만해가 전 부장의 공이 날아간 방향을 보며 대답한다.

“그러게요.”

전 부장이 뭔가 작정한 것처럼 안경 너머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 펀드 매니저들 옆에서 지켜보니 생색낼 수 있는 펀드 맡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자산운용회사도 펀드 성적이 좋아야 증권회사에서 판매 상품으로 선택해주니까.”


 펀드 산업은 2000년 운용과 판매가 분리했다. 자산운용회사는 펀드를 만들고 - 설정(設定)한다고 한다 – 펀드에서 모집한 고객 돈을 투자하며, 증권회사나 은행은 펀드를 판매한다. 즉 펀드의 고객은 판매회사에 원장을 두고 관리하며 판매회사는 자산운용회사와 펀드의 성적 또는 전망을 평가하여 자기 고객에게 판매할 펀드를 고르고 판매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많은 판매회사 리스트에 들어야 자산운용사는 먹고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펀드 산업에서는 증권회사가 ‘갑’이고 자산운용회사가 ‘을’이다. 그러나 반대로 증권 브로커 업에서는 펀드 매니저가 증권사에 위탁주문을 통해 수수료 수입을 제공하므로 갑을 관계는 바뀐다.


(골프 느낌)일러스트-조수연

 캐디가 다음 코스로 이동하자고 동반 멤버들에게 전동차에 타라고 손짓한다. 고만해는 연장자인 전 부장이 앞에 타라고 양보하고 전동차의 뒷좌석에 먼저 앉았다. 남 과장이 뒤따라 타자 전동차가 움직였다. 전동차 안으로 가을바람이 몰려드는데, 어찌 된 일인지 늘 과묵하던 고만해가 속에 담은 얘기를 계속 이어간다.

“저처럼 가방끈이 부실해 좋은 학연이 없는 사람은 대형펀드 운용에 끼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맡기면 저도 잘할 자신 있는데…….”

전 부장과 남 과장이 고만해의 푸념에 살짝 당황스러워 쉽게 대꾸하지 못하고 침묵한다. 그동안 그들 사이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이고 자기 치부를 드러낼 만큼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인영업 브로커가 펀드 매니저와 골프를 같이 하는 것은 흔하지만 고만해처럼 규모가 운용 규모가 크지 않는 인덱스 펀드 매니저는 일 년에 한두 번 인사치레로 자리를 하게 된다. 한 마디로 비즈니스 때문에 연례적인 눈도장 찍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고만해가 속 얘기를 털어놓으니 어떤 반응을 하나 고민스러운 것이다. 자칫 상대방 의중에 잘못 반응하면 역효과 날 수 있다. 일백만 원이 넘는 접대가 수포가 되면 영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침묵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아랫사람이라 부담이 덜 한 남 과장이 나선다. 혹시 남 과장 말에 고만해가 기분 나쁘다는 반응을 보일 때는 전 부장이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나서는 굿 캅-배드 캅 전략이다. 남 과장이 일부러 톤을 올리며 대꾸한다.

“아이고. 고 팀장이 어디가 어때서요. 전 고 팀장님 능력 절반만 따라가면 여한이 없겠어요.”

고만해가 과한 치사에 살짝 짜증 난다는 표정이다.

“이류 대학 출신을 절반 따라와서 어쩌려고요?”

남 과장이 다음 차례 공을 치려고 5번 아이언을 꺼내다가 그의 짜증에 주춤한다. 눈치 빠른 전 부장이 즉각 나선다.

“제가 알기에도 고 팀장 실력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던데요. 남 과장은 그런 좋은 평판 따라가기 쉽지 않죠.”

고 팀장도 남 과장에게 좀 과하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들어 전 부장의 말을 듣기만 한다. 모래 벙커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3월 오후 아진 찬 바람에 쌀쌀함을 느끼는 듯 부르르 흔들린다. 전 부장이 작정한 듯 말을 이어간다.

“고 팀장님. 그런 생각을 하신 김에 한 번 세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좀 바꿔 보면 어떤가요? 사람들이 자기 사는 틀에 갇혀 있다 보면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꽃이 내려갈 때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고은의 시까지 들먹이는 것을 보니 전 부장이 뭔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생각이 고만해는 들었다. 골프 게임은 어느덧 마지막 홀에 들어섰다. 고만해를 비롯한 동반자들이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마지막 그린을 향해 걷고 있다.

“오늘은 제가 고 팀장에게 중요한 상의를 드릴 참입니다. 운동 끝나고 식사하면서 얘기하려 했는데 지금 말씀드리지요. 이번에 우리 회사가 유능한 법인영업 브로커를 뽑습니다. 기존에는 영업능력을 우선으로 술 잘 먹고 인성 무난한 사람을 모집했는데, 이번에는 증권 관련 역량이 높고 영어가 되는 사람을 스카우트해 볼까 합니다. 헤지 펀드 시대를 대비해서 프라임 브로커로 사람을 키워 볼 생각인데 그러려면 고 팀장이 딱 적격인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펀드는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법에 따라 공모(公募)와 사모(私募)로 나뉜다. 다수 일반인이 투자 대상인 공모 방식의 펀드는 자본시장 관련 법률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반면 사모 방식 펀드는 소수 제한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므로 최소한의 규제만 허용하며, 선진국에서 활발한 헤지(hedge) 펀드는 이 사모 방식 펀드이다. 헤지 펀드는 이미 선진 금융시장에서 대세인 펀드다. 특히 이 펀드들은 투자 원금에 몇 배의 돈을 차입해 레버리지를 높여 투자하고 가장 첨단 금융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 결과는 투자자에 대한 고수익 배당이다. 헤지 펀드 매니저가 복잡한 대량 금융 거래를 일으키는 만큼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회사에도 큰 수수료 수입원이지만, 헤지 펀드의 투자 서비스 수요를 따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브로커가 필요하다. 이들이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로 알려져 있다. 펀드 매니저의 정점(頂點)이 헤지 펀드 매니저라면, 주식 브로커의 정점은 프라임 브로커라고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증권 산업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면서 천문학적인 돈벌이를 한다.


고만해는 전 부장이 프라임 브로커를 얘기하자 귀가 솔깃했다. 고만해와 전 부장 일행은 18번 그린의 홀 컵 속에 순차적으로 공을 넣는 소리를 기다렸다가 악수를 하며 라운딩을 끝냈다. 그러나 운동 후 샤워를 하는 내내 고만해의 뇌리를 사로잡고 놓지 않는 것은 프라임 브로커라는 단어였다. 돌이켜 보면 얼마 안 되는 펀드 매니저 생활이지만 가끔 짜증 난다고 느끼는 점은, 펀드 매니저가 부담하는 운용의 스트레스가 상당함에도 그에 대한 대가인 봉급은 기대했던 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고만해의 지상 과제가 삼양동을 탈출할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도무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펀드 매니저로서 자부심도 그에게 사치로 느껴졌다. 소형 펀드 매니저로 주변부에서 빙빙 돌며 그칠 것이라는 생각은 점점 두려움으로 증폭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늘 주변에서 부딪치는 법인영업 브로커 직업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펀드 매니저는 펀드 투자와 운용 과정에서 준비와 부담감으로 밤잠을 늘 설치는데, 브로커들은 – 영업에 필요한 과장된 행동이겠지만 - 늘 즐거워 보였고, 게다가 전해 듣기로 법인영업 브로커들은 상당한 성과급을 받았다. 재주는 펀드 매니저가 넘고 돈은 브로커가 쉽게 버는 것 같았다. 자기 진로가 답답하니 남의 떡이 커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고만해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전 부장이 오늘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샤워 후 허기를 달랠 겸 세 사람은 클럽 하우스 식당에 마주 앉았다. 고만해가 적극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영어는 왜 필요합니까?”

전 부장이 고만해가 의외로 쉽게 관심을 보인다는 표정으로 남 과장을 힐끗 보더니 고만해의 질문에 답을 한다.

“고 팀장이 같은 식구 되기로 마음을 먹으면 자세한 건 그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주 특별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얘기하지요. 아마 고 팀장 인생 항로를 확 바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다시 한번 그의 인생 투자 포지션을 조종할 기회가 찾아온 것을 고만해는 감지했다. 지금까지의 투자 포지션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목표를 위해서는 속도와 도약대의 높이가 너무 낮았다. 누군가 정확한 시점마다 기획한 것처럼 고만해에에 오퍼를 내고 있다는 느낌에 그는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고만해는 이미 변화를 선택했고, 전 부장이 선택지 하나를 들이댄 것에 불과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느끼며 자동차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만해가 이번 전 부장 제안을 수락 후 만들어지는 인생 궤적의 새로운 기울기 계수 값이 양(陽)인지 음(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음이든 양이든 그 절댓값이 크게 될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고만해는 어둠이 깔린 낯선 지방 도로에서 차를 몰아가다가 알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온다는 생각에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식량위기+기후위기 = 한국 식량 안보 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