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소풍의 산티아고 꿈길을 정리하며
2024년 9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6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무리해 봅니다.
내 나이 오십 중반이 넘으며 여러 번 명예퇴직을 고민하곤 했다. 텔레비젼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러 경험을 소개하는 걸 보고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1983년 8월 29일 교사를 시작하여 2024년 8월 30일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41년을 한 번의 휴직도 없이 달려왔다. 내 나이 예순둘, 한국을 떠나야 긴 쉼이 가능할 것 같았다. 긴 시간 산티아고순례길을 걸으며 지난 시간들과 은퇴 후 시간들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정년 퇴직 후 삶을 계획하며 버킷리스트에 올리게 되었다.
24년 3월 처음으로 혼자 두 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더 이상 미루면 힘들것 같아 정년 퇴임 이틀 후인 9월 2일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도 변경 불가에 수화물 없고, 환승 조건의 가장 저렴한 외국 항공사인 핀에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은 800km라 배낭을 메고 한 달 이상 걸어야 한다. 배낭의 무게는 욕심의 무게라고 한다. 퇴직 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이 들었다. 출발할 때 줄이고 줄여도 몸무게 57kg에 배낭 10kg이었지만 돌아올때는 몸과 마음 짐이 가벼워져서 52kg, 7kg이 되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800Km의 길을 28일~40일 정도 걸었다는 계획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큰 준비 없이 출발했다. 두 달을 메고 다닐 배낭도 욕심을 덜어내듯 가벼워야 하는 데 몇 번을 살펴도 불안과 염려에 더 이상 뺄 물건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 무게만큼의 삶을 둘러메고 걷는다는 말은 고통의 현실이 되었다.
‘고통의 길’은 길고 힘들었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걷자 발바닥 통증과 다리 근육통, 어깨와 허리 통증 등이 여름날 잡초처럼 번갈아 찾아왔다. 제일 먼저 배낭의 물건들을 확 비우자, 마음도 가벼워지고 걸음이 빨라졌다. 도시락만큼 커다란 약봉지를 덜어내고, 지도만 남기고 이정표 같았던 책도 버렸다. 눈이 뜨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리를 쭉 펴고 앞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허리를 곧추세우며 시선은 걸어야 할 길로 향했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풍경이 나지막이 ‘괜찮아’ 하였고 우리는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매일 오랫동안 걸으니, 하루에 25Km 이상을 걷는 날은 종이처럼 얇은 발바닥이 갈라지며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벌겋게 달아오르며 단단하게 뭉쳐지는 굳은살 발을 보며 문득 지나온 내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역할과 책임을 잘 해내야 한다며 감정을 감추고 나를 돌보지 않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하였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어 이 먼 길을 걷고 있다.
그러기 위해 나를 찬찬히 돌보기로 했다. 한 시간이 지나면 잠깐 쉬고 두 시간을 걸으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환기하며 정성껏 주물러주었다. 천천히 오래 가기 위해서이다.
시공을 넘나드는 아주 오래된 숙소의 낡은 방에서는 지친 순례자들의 뒤척이며 코 고는 소리가 불협화음이 되어 울려 퍼졌다. 내가 듣지 못하는 나의 고달픈 소리라 생각하니 자장가처럼 익숙해졌다. 이런 일상이 신기하여 수면시간을 줄이고 매일 달랐던 길을 기억하며 기록하였다. 글을 쓰는 동안 즐거움이 되살아나 하루를 다시 사는 것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도 길을 걷는 것과 같아 하루하루가 다른데 그동안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을 후회해도 이제는 소용없음을 굵게 패인 주름에서 마주했다.
어느 사이 여기저기 새벽길 나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피곤함과 어둠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매일 아침 낡은 배낭을 메고 일출을 보며 걷는다. 벽에 그려져 있는 조개껍데기와 노란 화살표 하나가 길을 이어준다. 걱정 대신 안심을 하고, 후회 대신 오늘의 길이 보인다.
어쩌면 삶은 보기 좋은 목표가 아니라 이런 순간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보름이 지나자, 뭐든 적응하며 익숙해졌다.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가족들의 목소리도 안 들리고 늘 계획적으로 진행되던 일상도 가물가물해졌다. 이내 한적한 풍경은 마음이 되고 훈훈한 가을바람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뻥 뚫린 세상이 오롯이 나의 무대였고 황금빛 노을이 조명이 되었다. 하늘색이 변할 때마다 생각이 유연해지며 예상외의 반전이 일어났다. 무관심했던 나에게 친절해지며 미소가 꽃처럼 피어나고 천천히 큰 숨을 깊게 내쉬며 여유로워졌다.
보름이 지나자, 뭐든 적응하며 익숙해졌다.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가족들의 목소리도 안 들리고 늘 계획적으로 진행되던 일상도 가물가물해졌다. 이내 한적한 풍경은 마음이 되고 훈훈한 가을바람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뻥 뚫린 세상이 오롯이 나의 무대였고 황금빛 노을이 조명이 되었다. 하늘색이 변할 때마다 생각이 유연해지며 예상외의 반전이 일어났다. 무관심했던 나에게 친절해지며 미소가 꽃처럼 피어나고 천천히 큰 숨을 깊게 내쉬며 여유로워졌다.
78세의 미국인 피터는 65세 은퇴 후 지금까지 매년 두세 달 동안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늘 누구에게든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고, 양보를 잘했다. 함께 식사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는 무릎이 좋지 않아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젊은이처럼 생기가 있고 행동은 명랑하여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나 이번 순례길이 내 삶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해.”
라며 수줍게 말하곤 했다.
75세의 독일인 세리는 62세에 암 진단을 받고, 교사를 퇴직한 후 같은 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고 싶었지만 뜻을 못 이루었다며 그 후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 와서 한 달 동안 걸을 수 있을 만큼 걷는다고 했다.
평소 몸이 힘들고 외로움이 짙어질 땐 산티아고 순례길 걸을 생각에 운동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나도 모르게 손짓발짓에 집중했고, 번역 앱을 사용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미래의 어떤 장면들과 맞닿는 감정을 많이 느꼈다.
피터와 세리가 여느 한국인들처럼 자기의 배낭을 택배로 보내지 않고 직접 메고 자기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무줄처럼 마음대로 걸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들에게 나이나 체력은 한계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생각조차 못 했던 모습들이다.
‘감사의 길’을 걸으며 혼자 걸어도 혼자가 아니고, 충만함으로 당당해졌다. 숙소를 혼자 나섰는데 길에서 쉬며 만난 사람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한다. 언어는 모두 달라도 눈빛으로, 미소와 손짓으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은 내 인생의 여러 조각과 똑 닮아 있었다.
갈색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말라가는 해바라기들은 젊은 날, 아버지의 사랑을 기다리던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래되어 닮아 모서리가 없어진 돌 조각들은 한 평생 고생 많았던 어머니의 굽은 손가락과 상처투성이 몸을 떠오르게 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과 평화롭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불쑥 올라오곤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나 자신, 눈물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슬픔, 그 모든 것들이 길 위에서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 감정들을 꺼내어 하나씩 안아주었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았고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길에서 가장 사랑하는 풍경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묵묵히 걸어가는 뒷모습은 그 사람의 앞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가장 그다운 모습이기에 진심이다. 나는 길 위의 풍경이 단지 들판이나 하늘 등 자연의 모습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뒷모습, 주름진 얼굴, 천천히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바로 이 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세상을 제대로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자신을 찬찬히 살피려면 혼자 걸으며 세상과 연결해야 한다.
성당에서 시작하여 성당을 거쳐 성당에서 멈추는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공동묘지가 참 많았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산 자와 죽은 자의 길’이라고 부른다.
이 고행길을 걸으면 죄를 사하여준다는 종교적 의미를 떠나 앞으로의 삶과 죽음을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성당 주변, 마을 입구마다 공동묘지에는 누군가의 만남과 이별의 흔적인 시든 꽃다발이 수북이 놓여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언젠가 도착 할 이별의 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 있으면서도 조금씩 죽음을 향해 걷고 있는 순례자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함께 걷던 독일인 세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허리를 약간 굽히고 작별 인사를 하듯 어루만졌다. 그는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삶의 끝과 만남 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품위를 동시에 느꼈다.
순례길은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죽은 사람의 흔적을 품에 안는다.
내가 이 길을 걷는 것도 결국은 내 안에 자리한 무언가의 죽음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것들, 그리고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조용히 놓아주는 법을 이 길에서 배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래서 늘 조용하다. 수많은 발걸음이 오가지만 그 안엔 각각의 이별과 만남의 고백이 담겨 있다. 그래서 모두가 이 길을 '산 자와 죽은 자의 길'이라 부르나 보다.
며칠 내내 초록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황무지 돌길을 걸은 적이 있다. 순례자들은 폭풍의 언덕 같은 고난의 길에서 뜨거운 태양과 거친 바람을 통과하려고 온몸을 꽁꽁 둘러싸고 딱딱한 막대처럼 걸었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버려진 행성을 걷는 로봇처럼 팔다리만 반복하며 앞으로 걸었다.
거친 바람은 앞에서 밀고, 뜨거운 태양은 위에서 내리꽂혔다. 그림자조차 지쳐 바닥에 점처럼 붙어 있었다.
귀에 못이 박혀 자동으로 하는 ‘부엔카미노’, ‘올레’ 인사조차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허허벌판에 귀신을 부르는 것 같은 풍력발전기 날개 돌아가는 소리에 열린 귓구멍마저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직 발바닥의 통증만이 내 존재를 알게 했다. 나는 그저 다음 걸음, 또 다음 걸음을 생각하며 걸었다. 바람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두꺼운 침묵을 깨뜨렸다.
황무지의 길은 그저 풍경만이 아닌 마음의 상태 같았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들판, 돌과 먼지뿐인 길 위를 걷다 보면 사람도 자신 안의 푸르름을 잊어간다. 나는 그 사막 같은 풍경 속에서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돌아가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 길을 끝내 걸어 낸 사람은 초록빛이 없는 황무지를 지나며 그다음 살아있는 생명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다. .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마을 이정표가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지며 결승선을 향해 달리듯 길을 걸었다. 지루하고 험한 길도 마침내 끝이 있음에 희열을 맛보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 600km를 지나온 걷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가 된다. 많은 순례자는 새벽 5시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순식간에 침낭을 정리한 후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검붉은 여명의 빛이 다가오는 길의 풍경 사이로 각자의 음성이 들리며 지금까지와 다른 세계의 경외심을 경험하게 된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아직도 잠자고 있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빨리 걷기가 아닌 ‘여유로운 사색의 길’을 즐긴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따라 길을 걸으며 대자연을 닮아 아름다운 사람들에 동화 된다. 오래되어 척박한 집 창가에 놓인 화분들에서 풍기는 꽃향기와 흙냄새, 어디선가 방금 구운 빵 냄새가 코끝에 다가선다. 그럴 때면 배고픔보다 따뜻한 사람들과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선물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많은 순례자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끝나서 슬픈 게 아니라, 이 길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완주 증명서라는 선물을 받았지만 나를 사랑하게 된 이 새로운 길들을 계속 걷고 싶었다. 이곳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종 도착지였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출발지가 되어 ‘더 이상 걸을 곳이 없다’라는 땅끝 묵시아를 거쳐 피스테라까지 150Km를 더 걸었다. 9월 2일 집을 나서서 모두 1,000Km를 걸어 10월 25일 대서양 0.00km 이정표 종착점이자 또 다른 출발지 앞에 다시 섰다.
세상의 끝 바다는 따뜻한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대서양의 거친 파도는 연신 대륙의 끝 피스테라 거대한 절벽에 부딪히며 할 말이 많은 듯 하얀 물거품을 토해냈다.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에게 생명이 되었을 작은 등대 언덕에 앉았다. 신발 밑창은 닳아 반질거리고 해어진 양말 구멍들 사이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저 신발과 양말,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사용한 낡은 순례 물건을 태우는 전통 대신 사진을 찍으며 이 길을 잊지 않기로 했다.
60여 년 익숙하여 몸에 배어있던 익숙한 것들이 싫어 정년퇴직 며칠 후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두 달의 방학 내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렸다. 느린 발걸음, 느린 시간, 느린 생각. 늘 계획적으로 시간에 쫓기듯 채근하며 살아왔던 나는 비로소 살아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서 너야.’
매일 몇 시간씩 걷는 동안,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비교하지 않기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가볍게 비우고, 새롭게 배운 것들을 많이 채워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나의 순례길은 나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곳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여러 인생 선배는 용기 있게 도전하여 자기의 길을 찾아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도전하여 노력하면 천천히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자신이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순례길을 완주하고 돌아와 나는 변했다.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여전히 똑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더 유연해지고 여유로워졌다는걸.
예전에는 익숙하여 지나갔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처음으로 진짜 아름다움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달라졌다. 순례길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과 나눈 말 없는 동행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가끔은 단 한 마디의 “부엔 카미노”가 어설픈 위로보다 더 따뜻하게 마음을 감쌌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마음을 먼저 꺼내 보이려 애쓰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법을 그 길에서 배운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인생의 정답을 찾아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늘의 내 마음이 향하는 길을 따라, 하루하루를 순례길 걷듯 감사하며 살아간다. 바쁜 일상에서도 매일 걷고, 하루를 되돌아보는 글쓰기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되었다.
풍성한 방학이 끝나고, 인생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길을 마음으로 걷고 있다.
삶은 계속되고,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언젠가 또 길을 떠나게 된다면, 그건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한 여정일 것이다.
* 그동안 두 달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정이 있어 마무리가 늦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25년 1월 8일 - 2월 7일 호주와 뉴질랜드 한 달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