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공부한 지 1년, 돈을 벌었다.

2016년 11월의 언제

by 유범수

After effect로 한창 이것저것 만들어보던 2016년의 11월.

유튜브에서 잭킹(Zach King)의 마술 같은 영상들을 따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한창 After effect를 공부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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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달을 어설프게 합성해서 감자칩이 되는 영상인데, 지금 보면 스무 살의 나는 엄청 말랐었구나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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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건지, 아니면 연출을 그대로 따라한건지 모르겠지만 지금봐도 참신하고 귀여운 영상들이다.


그 밖에도 데일산드리(Leonardo Dalessandri)의 영상을 따라 해보고 싶어 무작정 편집기술을 따라 해서 직접 촬영하고 만들었던 "WatchTower of Journalism"라는 영상은 이름만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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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사진의 바닥의 보도블럭이 일정한 크기의 정사각형이어서 하이퍼랩스를 시도하기 참 좋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에 영상편집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학과 내에서 뭐 상도 받았던 것 같긴 한데,

사실 그때 나는 결과물을 보고 절망하고 있었다.


데일산드리랑 똑같은 방식으로 촬영하고 편집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영상의 연출이란 것도 모르고,

기획이 뭔지도 모르는 딱 대학생의 UCC수준으로 나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데도 대체 왜 나는 뭐가 문제일까, 재능이 없는 걸까 하는 여러 잡생각이 많은 시기였다.


지금 다시 보면 나름 기특한 건 꽤나 열심히 분석을 했는지 하이퍼랩스연속트랜지션고속촬영, 셔터스피드에 대한 건 잘 공부하고 시도한 듯했다.




아무튼,

그렇게 1년여 동안 여러 가지 UCC(?) 영상들을 만들면서 공부를 하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경로에서 첫 영상외주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나랑 같이 영상편집을 공부하던 대학 동기형이 있었는데,

(앞으로 자주 등장할 것 같으니 부리또형이라고 칭하겠다.)


이 형은 그 당시에 영상 공모전에서 상도 타고 감각도 있으며, 함께 다니면서 인간적으로도 배울게 참 많은 형이었다.

그 형이 나보다 군대를 3개월 정도 먼저 입대하게 되었는데 갑작스럽게 군대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들어왔던 영상외주를 나에게 맡기게 되었다.


그 당시에 카페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당 6000원 남짓을 받던 나에게 영상 1개에 100만 원이라는 돈은 매우 큰돈이었다.


물론 내가 만든 영상이 그렇게 큰돈에 팔린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많았지만,

부리또형이 어느 정도 작업을 많이 마쳐놓았던 상태이고, 클라이언트의 요청사항에 맞게 다시 키프레임을 찍고 수정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기에 일단 하겠다고 했었다.


그때당시에 애플의 "Don't Blink"라는 107초 광고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고,

내가 제작할 영상은 이 광고를 패러디하여 73초의 투자유치용 홍보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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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감 있는 빠른 템포와 가시성이 높은 타이포로 이루어진 이 광고는 지금 봐도 엄청 멋있다.


결과적으로는 클라이언트가 매우 만족했다.

거기에 영어버전으로 하나 더 만들어 줄 수 있냐는 제안에 30만 원을 더 받으며 한 달도 안 되는 기간만에 학생으로서는 꽤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부리또형은 훈련소를 마치고 온 연락으로 외주 잘 마무리해 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사실 내가 더 고마웠다. 댕꿀이었다.)


내 첫 (외주) 경험이기도 했지만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지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클라이언트의 회사는 서울에 있었다.

대부분의 미팅은 전화로 진행을 하고 있었고, 이 클라이언트는 내가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클라이언트는 나를 부를 마땅한 호칭이 애매해 항상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존대를 해주고 계셨었다.


뭐 이런저런 요청사항들을 내 나름 최선을 다했었고, 작업 마무리와 입금까지 완료된 시점에서 클라이언트는 정말 감사하다고 자신이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한번 서울로 오실 수 있냐고 했었다.


그 당시에 드디어 내가 영상으로 돈을 벌었다는 자신감에 취해있을 때 그 제안이 뭔가 엄청 비즈니스적이고 어른스러운 말로 들렸다.


흔쾌히 나는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고,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스물한 살 대학생 딴에는 꽤나 어른스러워 보이는 복장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났다.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 이때까지도 몰랐다.


분명 클라이언트는 전화로 넉살 좋게 웃으면서 본인이 정말 괜찮은 식당을 예약해 놨다고 했었고,

나는 스테이크를 썰어보는 건가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2시간에 걸쳐서 서울에 도착했다.


어른과 이제 갓 성인의 분위기 차이는 생각보다 컸었다.


본인이 "선생님"이라고 칭하던 작자가 생각보다 어린 학생이라는 것이 많이 놀란 듯하였다.


서로의 위치를 못 찾아서 헤매다가 눈을 마주쳤고, 90도로 인사하는 어린애를 보면서 그 또한 당황했을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나를 쳐다보며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침묵했던 잠깐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서울에 혼자 올라와서 신난 촌놈의 머릿속에는 대체 어떤 식당을 갈까?라는 설렘만 있었다.


잠깐의 침묵뒤에 클라이언트가 나를 데려간 곳은 고속터미널 안에 있는 파리바게트였다. 본인도 빵을 몇 가지 고르고 나에게도 고르라 했고,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나도 소시지빵 한 개를 골랐다.


클라이언트와 나는 커피 한 잔씩과 빵들을 가운데에 두고 파리바게트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는 갑자기 나에게 본인의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앞으로 어떤 성장을 할 것이고, 본인이 돈이 얼마나 많고, 지금 차고 있는 시계가 얼마짜리이고 하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아.. 그렇군요..! 하며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있었고,

클라이언트가 이내 나에게 얘기한건 본인의 회사에 들어오면 어떻겠냐라는 제의였다.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지금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핑계로 거절을 했고,

그에 굴하지 않고 클라이언트는 현재 대학을 다니면서 자기 회사에 일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본인 회사의 홍보팀에 팀장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자꾸 들이밀었다.


끝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을 1시간여쯤 했을까.


주구장창 돈자랑을 하던 클라이언트와 나는 헤어졌고,

그렇게 스테이크는커녕 한 손에는 먹지도 못한 소시지빵 한 개를 든 채로 고속터미널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사기당한 건 아니지만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나는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고, 가는 버스 안에서 빵을 먹었다.

화면 캡처 2025-06-19 144954.png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소시지빵을 좋아했고, 그때도 이 빵을 먹었다.


아 참고로, 몇 년 전에 그 회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사업자는 이미 폐업처리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카톡 프사는 행복해 보이셨다.


그렇게 나의 첫 영상외주 아르바이트는 무사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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