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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5. 2017

직업으로서의 디자인

<직업으로서의 문학>을 읽으며

연휴 첫날이자 토요일, 다른 이들에게는 흥분되는 순간이겠지만 미세먼지 수치에 민감한 육아아빠에게는 힘겨운 시간이 아닐수 없다. 다행이 먼저 지쳐 잠든 아이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얻어 책을 펼쳤다. 이번엔 문학비평가 조영일의 <직업으로서의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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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펼치고 몇페이지 읽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내 눈은 직업으로서의 '문학'을 읽고 있었지만, 머리속은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글을 읽는 것이 너무 더디다. 한문장 한문장이 마치 디자인의 현실을 말하는듯 싶기에, 문학을 디자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동시에 해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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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배버의 유명한 두권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과 닮았다. 의도한 것이겠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오마주도 아닌듯 싶다. 저자는 그저 정직하게 "문학가란 무엇인가' 아니 '문학도 직업이 될 수 있는가'에 대답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질문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다. "디자인도 직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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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서문을 읽고 '톨스토이'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을 펼쳐 보았다. 이 책을 소개한 이성민 선생이 왜 그 책에 관심을 두었는지 다소 이해가 되었다. 나는 예전에 톨스토이 책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책에는 예전에 요약한 글들와 메모들, 도식들이 있었다. 아... 나는 꽤 오래전부터 어떤 도식을 얻고 싶었나 보다.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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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도식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를 보니 과거 내가 예술가의 직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선명해졌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당시 나는 이 예술가라는 직업과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연관짓지 않았다. 왜냐면 디자인은 디자이너 외에 배우는 사람이 없었으며, 대중과 디자인은 등치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사람들은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디자이너를 별로 존중하지 않았다. 그저 "디자인은 내가 충분히 알고 있으니 너는 내 생각을 구현하면 돼"라는 정도의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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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나는 늘 생각했다. "사람들이 정작 디자인을 배운다면 저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을텐데... 본래 모르는 사람이 더 용감한 법이니까... 하지만 디자인은 용감해선 안되지 않는가. 대량생산을 하니까 더 신중해야 하는데... 차라리 용기라면 예술이 더 필요할텐데... 그런데 세상은 반대로 예술 앞에선 주눅이 들면서, 디자인 앞에선 왜 이리도 자신있을까... 사람들이 예술을 존중하는 건 예술을 어느정도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디자인을 배우면 디자인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대강 이런 생각이었다. 그 이래로 난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이 배우는 디자인 교육에 관심을 두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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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반드시 시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려면 디자인을 사고팔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경험하는 디자인 시장은 과연 디자인을 사고팔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예를 사고팔고 있는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큰 문제다. 반드시 전자의 상태로 바꿔야 하는데 그 방법은 참으로 요원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역시 '교육'만이 떠오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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