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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01. 2018

아름다움과 뇌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읽으며


너무 사회 현상과 철학적 사색에 쫓겨온듯 하여, 다시 과학책을 펼쳐들었다. 역시 과학책이 주는 사색은 다른 뇌를 자극한다. 마침 읽기 시작한 책의 주제도 뇌과학이다. 그동안 사이언스 온에서 간간히 읽던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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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뇌과학을 집중해서 읽었던터라 뇌의 작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학습되어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초보자들을 위한 위한 책이라 그냥 머리를 식힐 요량을 펼쳤다. 복습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몇페이지 읽지 않아서 메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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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자니가의 책에서 뇌의 유연성이 높아야 아름다움을 잘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읽고 나는 '아름다움=뇌의 유연성'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방금 읽은 이 문장들은 그런 편견을 무참히 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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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 높은 뇌, 즉 빠른 학습으로 적응력이 강한 뇌는 기억력이 낮다는 사실을 읽으며, 예술가들의 유목민적 특성을 상상하게 되었다. 반면 유연성이 낮은 뇌, 느린 학습으로 적응력이 낮은 뇌는 기억력이 안정되어 안정된 학습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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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면 예전에 두 후배가 당구를 배웠다. 한 후배는 금방금방 실력이 늘었는데, 자만심 탓인지 실수가 잦고 결국 별로 당구를 즐기지 않았다. 반면 다른 후배는 답답할 정도로 정체되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아마 그 친구는 지금도 당구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당구 실력도 앞선 후배보다 실력이 월등하다. 자유와 아름다움이 역량의 문제라면 후자의 경우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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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성실함, 꾸준함, 원칙, 느림에 의한 성과가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이런 사실을 내면화했다. 그래서 그런지 욕심도 줄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본래 성급하고 조급해서 실수가 많고, 늘 결과를 잘 맺지 못하는 우유부단(유연)한 성격도 조금은 고친듯 싶다. 느린 삶의 지혜를 뇌의 지혜에서 다시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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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능력, 판단력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된다. 아름다움은 유연하고 예민한 사람들만의 전유 영역이 아니란 너무 자명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물론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자극적인 아름다움이다. 지난 2세기동안 그런 사람들을 평가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진다.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서서히 아름다움을 축적해가는 예술가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분들의 태도와 작품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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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도 자극적이지 않지만 뭔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계속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담백한 아름다움 말이다. 만약 아름다움이 모방의 승부라면, 어쩌면 자극적인 아름다움보다 담백한 아름다움이 더 기억에 오래남고, 모방을 많이 하도록 이끌지 않을까. 우리 뇌가 그렇고, 우리 삶이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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