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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Aug 05. 2018

나는 장애가 창피하지 않아

예전에 웃음이란 무엇인가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이것저것 뒤지다보니 웃음은 급박해 보였던 상황이 안전하다고 느낄때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령 바나나 껍질을 밟고 손을 허우적거리며 꽈당하는 모습이 웃겨보이는 것과 비슷한다. 그런데 넘어진 사람이 피를 흘리는 등 크게 다치면 전혀 우습지 않다. 넘어지자마자 일어나서 창피하는 모습을 보여줄때 웃음이 나온다. 즉 웃음은 안전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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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를 아이에게 실험한 적이 있다. 옆구리에 손을 가져가면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 아빠의 행동은 위협적이지만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해도 웃을까? 울까? 나는 어쩌면 위에서 말한 웃음의 정의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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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희극'이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희극편을 둘러싸고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한다. 이 소설에 의하면 기독교에서는 웃음을 칠칠맞은 행동으로 여겼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술은 감정을 공감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니 웃지 않는 행위가 칠칠맞은 행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호르헤 수사는 웃음이 예술화 될까 두려워 살인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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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장애인과 정상인의 구분이 있다면, 나는 '장애인'을 '정상인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읽는다. 장애인들 입장에서 정상인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새로운 면이 웃음으로 승화된다면 그것은 나의 인식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래의 사례는 너무나 좋다. 이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예술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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